하늘과 땅의 우주론적 질서를 조합하여 인간과 우주의 조화, 만물의 흐름을 살피려 한 '간지(干支)'는 중국에서 유래해 동양의 한자권 여러 나라로 퍼져나간 역법 가운데 하나이다. 간지는 하늘의 질서를 뜻하는 '천간(天干)'과 땅의 질서를 나타낸 '지지(地支)'가 합쳐진 이름인데, 이 둘을 조합하면 모두 '육십갑자'가 만들어진다.
우선 천간은 '갑, 을, 병...'으로 이어지는 십간(十干)으로 구분되고, 지지는 '자, 축, 인, 묘...'등의 십이지지로 나뉜다. 2021년 새해는 천간의 여덟 번째인 신(辛)과 지지의 두 번째 '축(丑)'이 어우러지는 신축년이다. 이때 '신'은 흰색을 뜻하고, '축'은 소를 가리키므로 내년은 '흰 소 띠의 해'가 되는 것이다.
소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나라에 전해진다. 그만큼 농경문화가 오래된 까닭일 것이다. 먼저, 중국의 기문(奇聞) 전설집 『박물지(博物志)』에 따르면 "구진군(九眞郡)의 냇가에 신우(神牛)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검은 소가 나타나면 신우는 싸움을 벌였으며, 그때마다 즉시 바다에 해일이 일어났다. 혹 누런 소가 나타나 싸움을 벌일 때면 언덕 위에 있는 소들은 모두가 공포에 떨었다. 사람들이 그 소의 길을 막고 잡으려 들면 벽력(霹靂) 같은 소리를 냈는데 사람들은 그 소를 신우(神牛)라 불렀다."고 한다.
이 밖에도 우(禹)나라 때는 임금이 물난리를 막기 위해 '철우(鐵牛)'를 만들어 황하에 넣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순조 33년(1833), 문신 김경선(金景善)은 북경을 탐방하며 쓴 기행록(연원직지(燕轅直指))에 "흰돌을 갈아서 난간을 만들어 보호하고, 등 위에는 고전(古篆) 수십 자를 새겼다."라고 철우를 묘사해 놓고 있다.
그리스 신화 속에도 소는 곳곳에 출현한다. 특히 에우로페를 납치하기 위해 소로 변신한 제우스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가 해변에서 놀고 있을 때, 제우스는 황소로 변신하여 접근했다. 에우로페는 황소가 너무나 순하고 감촉이 좋았기 때문에 그 등에 올라탔고, 그 황소는 에우로페를 태운 채 깊은 바다로 헤엄쳐 갔다. 이렇게 황소의 모습으로 에우로페를 납치한 제우스는 크레타 섬으로 데려가 에우로페와 정을 통했다. 에우로페는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미노스, 라다만티스, 사르페돈 세 아들을 낳았다.
이 가운데 미노스는 크레타 섬의 왕권을 쥐는 과정에서 포세이돈의 도움을 받는데, 이때 포세이돈은 신의 약속을 보여주기 위해 흰 소 한 마리를 미노스 왕에게 보내준다. 그러나 막상 왕위를 차지하고 난 미노스는 포세이돈이 보내 준 이 흰 소가 탐이 나서 다른 황소를 제물로 되바쳤다. 이에 포세이돈은 크게 분노하여 미노스 왕의 왕비 파시파에를 그 황소에게 반하게 만들었다. 황소에 대한 욕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던 파시파에는 다이달로스에게 은밀히 목조 암소를 만들게 하고는 그 속에 자신이 들어가서 황소와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하여 이 둘(흰 소와 파시파에 왕비) 사이에 태어난 것이 반인반우(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소)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다. 미노스 왕은 이 괴물을 가두기 위해 다이달로스에게 명을 내려 미궁 '라비린토스'(영어 미로labyrinth의 어원)를 만들어 아테네에서 보내오는 소년, 소녀를 먹잇감으로 넣어주었고, 영웅 테세우스는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이 괴물을 해치운다.
우리나라에서 소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처음 보이는데, 신라 파사왕 5년(84)에 고타군수가 청우(靑牛)를 바쳤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청우는 선인, 도인, 성인을 상징하는데, 이는 노자(老子)가 서역(西域)으로 갈 때 탔던 수레를 청우가 끌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현대인들에게 '흰 소'는 이중섭의 그림으로 익숙하다. 이중섭의 <흰 소>는 일제강점기 백의민고의 강인한 생명의지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 살점 없이 근골만 드러낸 것은 한국전쟁 직후의 궁핍했던 민중의 생활상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처럼 소는 오랜 세월 인류 보편의 삶 속에 공존해 온 동물이다. 소 특유의 우직함과 근면함을 생각하며, 내년 한 해는 코로나로 힘들었던 올 한 해를 우직하게 극복해 내는 시간이 될 것이라 믿어 보자.
-<김해뉴스>, 2021.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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