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 떠돌기... 60

맘 속의 고드름 한 줄...강원도

강원도는 늘 마음 한구석에 좀체 녹지 않는 고드름 한 조각같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봄, 여름, 가을의 풍경보다 겨울의 강원도가 그만큼 인상적이었던 까닭이다. 발목이 푹푹 빠지던 동해의 어느 골목길. 시멘트 담벼락 사이로 흑백사진처럼, 가늘게 이어지던 골목길 풍경. 불빛 하나 없는 태백산 산줄기를 하염없이 덜컹거리며 달리던 비둘기호의 퀘퀘한 냄새,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 산도로를 빨간 완행버스로 하염없이 올랐던 그때, 차창으로 흐르던 겨울 눈더미 속의 탄광빛 개울들...멀미가 잦던 스물 한 살 때의 강원도 기억들이다. 2년 여의 학과 조교 생활을 마치고 불쑥, 그 기억을 따라 올랐던 또 한 번의 강원도. 캄캄한 어둠 속에 수십 개의 주황빛 실내등을 띠처럼 두르고 달리던 무궁화호. 오가는 차편도 드물던 ..

제법 먼 길...

강원도를 다녀온 지 일주일만이다. 태백산의 골 깊은 마을들을 징검돌처럼 겅중겅중 건너 다니다가, 불쑥 산자락 탄광촌들의 그늘에서 묻혀 온, 마음의 그을음 한자락을 씻어 보고픈 생각. 그래서 먼 바다, 제주로 향한다. 비행기로 한 시간 채 안 되는 길임에도 난 언제나 제주가 멀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먼 느낌의 제주가 좋다. 함부로 가볼 엄두가 나지 않는, 그래서 몇 번을 큰맘을 먹어야 감행할 수 있는 여정....그래서 계획에서부터 설레고마는 길... 관광객에 치여 번잡하게 다니기보다는 내뜻대로, 때로는 아무 계획없이, 이리저리 흩어진 길들에 섞여가는 여행이 좋다. 학창 시절, 제주도행 졸업여행을 거부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제주도에서도 기계는 반듯한 길들만 찾는다. 현지 어른들께 길을 물어가며 해안도로..

'ㅡ리단길'을 아시나요?

언제부터인가 나라 곳곳에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본뜬 이름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더니, 이젠 새롭게 꾸며진다 싶은 길거리엔 모두 '-리단길'을 붙이고 있다. 객리단길(전주), 평리단길(인천), 황리단길(경주), 해리단길(부산), 봉리단길(김해) 들처럼, '-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거리는 전국에 20여 곳이 넘는다. 도시의 낡은 골목들이 새롭게 단장을 하고, 쇠퇴한 골목들에 사람들이 북적대는 일은 분명 반길 만한 일이다. 그러나 왜 하나같이 '-리단길'이라는 이름이어야 할까? 원래 '경리단길'은, 1957년 3월에 설립된 '육군중앙경리단'(현, 국군재정관리단)이 위치해 있던 일대를 일컫던 이름이었다. 따지고 보면 각 동네의 첫 글자만 따와 거기에 '-리단길'이라 붙이는 것은, 우리 어법에도 전혀 맞지 않..

네잎클로버...혹은 토끼풀

어느 집 계단 한 켠에 소담스런 화분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화분에 심어진 토끼풀은 처음이다. 어릴 적, 학교 오가는 둑방길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느라 오후 햇살을 다 놓치던 때가 있었다. 그땐 그 행운말 하나에도 그리 간절했었는데... 그리스 신화에선, 벌들이 독풀을 피할 수 있게 제우스가 붓으로 흰 동그라미를 표시해줬다고 전한다. 토끼풀꽃이 그리 생긴 까닭이다. 그 흰꽃대를 갈라 풀반지, 풀시계를 만들어 연인의 손목을 수놓아 주던 젊은 날 한 때도 있었다. 수십 년 전 일깃장 갈피 어딘가에는, 입시를 앞둔 내게 네잎클로버를 코팅해 건넸던 갈래머리 소녀와의 추억 한 토막도 끼워져 있을 것이다. 저 소담한 화분 하나에도 옛생각이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는 걸 보니, 확실히 갱년기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