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강변민박> 한 채를 꿈꾸다...

naru4u 2009. 7. 29. 20:04

 

<꿈>

 

  내가 가진 많은 꿈들, 가깝고 먼 꿈들 가운데 하나는 한적한 강변마을에 조그마한 민박집 한 채를 꾸리는 것입니다. 이름 난 유원지의 번듯한 민박집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저 벽면에 붉은 페인트로 ‘민박’이라고만 써놓아도 좋고, 또는 흰색 아크릴 간판에 ‘민박’이라고 덧댄 붉은 글씨가 형광등 불빛에 껌뻑거려도 좋습니다.

 

  객을 들일 수 있는 방은 한 두 개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민박집 주변엔 이름난 유적지나, 빼어난 풍광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먼 길 가는 객들이 고갯길 하나를 앞두고 어중간하게 저녁을 맞게 되면, 부담없이 성큼성큼 마당을 걸어 들어와 “좀 쉬었다 갑시다”라고 아는 체만 해주어도 되는 그런 민박집. 


  밤이 깊으면 민박집 앞 강물에는 도심지 같지 않은 별들이 말갛게 떠서 흘러내리고, 그것들 가끔 돌부리를 걷어차는 둔탁한 소리도 들릴 법한 민박집. 여름이면 강물에 멱 감는 계집아이들의 물 치는 소리와, 그것을 훔쳐보는 개구쟁이 아이들의 키득거림이 벌레소리 마냥 자잘하게 귀를 간질이는 집. 그때마다 아이들의 가슴 속에서 새나온 죄책감과 은근한 호기심들이 반딧불이로 변해서는 저마다의 머리맡에 문신처럼 박히는 밤 풍경. 가을이면 발갛게 익은 과실들을 밤참으로 내놓고 그 방값으로는 아이들 키우는 재미 한 자락 얻어듣는 것만으로도 족한 집. 겨울이면, 축담까지 쌓인 눈을 궁글려 우리 가족을 닮은 눈사람 일가를 세우고, 그 한쪽 팔에 각각 ‘민박’이라고 쓴 팻말을 꽂아두면 될 일. 어쩌면 입대를 앞둔 스무 살 남짓 사내녀석이 자기 여자친구를 꾀어 그 골짜기로 들어섰다가 눈을 핑계로 하루를 묵어가자고 떼를 쓸지도 모를……. 그러나 끝내 새벽녘이 되어선 헝클어진 머리만 긁적이며 둘이서 나란히 손잡은 채, 눈 쌓인 들길을 첫발자국 예쁘게 찍으며 돌아나갈 것만 같은 집.

  그 꿈의 처마 한 귀퉁이에 나는 오늘 <강변민박>이라고 쓴 팻말 한 채 내어 겁니다. 그 꿈 속에서 내가 팻말을 내어 거는 동안, 저만치 텃밭에서 상추를 솎아, 옆에 선 아이 광주리에 담고선 내쪽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는 주름진 얼굴이 있겠지요. 내가 사랑하는... 

 

 

 

 

 

 

 

 

 

 

 

 

 

 

 

<강변 민박>

 


내 꿈은

여울목 얕은 강변 어디쯤

‘민박’이라 쓴 간판 하나 내거는 것.


눈 시린 발목으로 밤들녘을 오래 걸어

첫 사랑과 함께 찾아든 솜털 머슴애,

윗목에서 밤새,

발가락만 꼼지락대다

부끄럽게 삽짝을 나서고

자식들 얘기로 밤새 두런대는 노부부 군불방도 하나쯤.

잘 익은 감 몇 알은

얘깃값으로 내놓아도 좋고

타박고구마 몇 알에

노부부 젊은 날이 구수하게 번지리라 

타닥탁탁, 장작불 몸 달구는 아랫채에

주름진 생들 구들장처럼 끓어오르면

항아리 그득한 동치미 국물에

보름달 하나 띄워서는

머리맡에 자리끼로 올리는 건

또 어떠한가.

그러고도 아직 남은 달빛이 있거든

내 마지막 사랑도 그들처럼

남은 방 한 칸에 넉넉하리라


 

내 머언 뒷날 꿈은

‘강변민박’

간판 하나 내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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