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해방', 그 모호한 이름...

naru4u 2022. 4. 21. 18:08

10대 때부터 나는 늘 해방을 꿈꿨다. 아버지로부터, 학교로부터, 그리고 나자신으로부터...

결국 '열 여섯'의 겨울에 나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을 감행했다.

울타리 밖은 추웠고, 늘 함께라 여겼던 친구들은 막상 혼자가 된 나에게서 저만치 떨어져 나갔다. 정작 해방을 감행했음에도 울타리 밖 어디든, 열 여섯 짜리가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결국, 완행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외할머니 집을 찾아가 치기 어린 반항을 흉내낼 따름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외손주 놈을 내치지 못하신 외할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손주놈 밥을 해먹여야 하는 때늦은 고역을 치르셨다. 외할머니의 그 노역을 가늠하지 못한 채, 새벽이면 비릿하게 번져나는 연밭길을 돌아, 난 새벽 완행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꼬박꼬박 학교를 다녔다. '해방'...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무슨 해방이었겠냐마는, 그 땐 그저 질식할 것만 같던 아버지의 그늘 밖으로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큰 해방이었다.

 

<나의 해방일지>는 내 인생 드라마 중 하나인 <나의 아저씨>의 작가 박해영 작품이다. 잔잔한 대사같지만 가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따끔하게 찔러오는 가시같은 대사들, 그리고 그 따끔거림을 호~ 불어주듯이 톤 다운된 화면들이 그의 작품이 갖는 매력이다. 그래서 대사가 없는 장면 하나하나에도 세심하게 눈길이 간다. 필름 카메라의 깊은 심도처럼 화려하지 않은 색감들이 풍부하면서 깊이가 있어 좋다(물론 이건 연출의 기법이겠지만). 연출은 김석윤 PD가 맡았다. <눈이 부시게>,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송곳> 등의 작품들로 이미 내 눈을 사로잡은 이다.

이들의 해방일지는 집과 회사 모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의 기록들이다. 각자 해방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과연 해방이라는 것은 가능키나 한 것일까? 어쩌면 해방이라는 것은 하나의 구속에서 또 다른 구속으로의 자리이동일 뿐인지도.

그래서 우리는 늘 이곳 저곳, 또는 이 사람, 저 사람으로 옮겨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서울에서 '산포'까지 오가는 출퇴근길들 자체가 어쩌면 그들의 해방구일지도 모를 일이다.

 

전철, 마을버스, 산포의 푸른 들길들...그렇게 이동해 가는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은 늘 막연한 기대감에 젖는다.

어쩌면 '여기'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러나, '해방'...

이 단어는 그 갈망만큼이나 모호하다. 그래서 아득하기만 하다. 잡히지 않는 무지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