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 떠돌기...

<문수암>에 가시거든...

naru4u 2007. 8. 27. 17:23
문수암에 오르다보면  쑥- 육지로 몸을 밀어넣은 바다를 발치께 두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급한 걸음에 미처 수습치 못한 섬조각들이 어떤 것들은 똑,똑, 떨어져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주르륵- 흘려져 있기도 하지요. 대웅전 뒤편 부처 모습이 비친다는 바위 틈에 사람들이 눈길을 모으는 동안, 그 섬들 흐트러져 있는 발치께를 내려다보는 일 또한 문수암을  즐기는 일 가운데 하나지요. 게다가 거기 앉았다 일어서신 황동규 시인의 시 한 편 떠올려 보는 즐거움도...
황동규 시인께서 여러 해 전, 여기를 다녀가시고 남긴 시가 있어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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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산 문수암>
      - 박태일에게

                                                *황 동 규*


저 만 쌍의 눈을 뜨고 깜빡이는 남해바다
이처럼 한눈에 들어올 줄은 몰랐다.
입구의 어두운 동백들 때문일까.
청담(靑潭)이 살다 관뒀다는 기호(記號), 사리탑에서 내려다보면
언젠가 시력(視力) 끊겨도 몇 년은 계속 보일
저 환한 자란만(紫蘭灣), 떠도는 저 배들 저 부푼 구름들 저 잔 물결들
자세히 보면 자란섬 뒤로
나비섬 누운섬, 떠다니는 섬들도 있다.
청담 스님이 슬쩍 자리를 비워준다 해도
감을래야 감을 수 없는 이곳에 눈을 파묻지는 않으리.
뒤에 문득 기척 있어
동백이 떨어진다.

동백 뒤에 청담이 나오면 청담을...

바다에 해가 뛰어들고
섬들의 겨드랑이가 온통 빛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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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2001년 제1회 <미당문학상> 최종후보작으로 뽑혔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