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부끄러움...

naru4u 2010. 8. 10. 01:19

묵은 메일함을 뒤적이다 7년 전 쯤, 혼인을 앞둔 내게 축하와 함께 '부인 말 잘 듣고 살라는 협박'을 얹어 보낸 어느 후배의 메일 하나를 다시 꺼내 읽었다. 같은 대학원, 같은 지도교수님 밑에서 비슷한 고민으로 20, 30대의 한 때를 얽어 지낸 후배였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늘 밝아 좋았고, 대여섯 살이나 많은 내게 어려움 없이 잔소리를 해대던 그 당당함이 좋았다.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선 나보다 치열했었고, 주변 사람 살피는 일에는 세세한 배려가 느껴졌었다. 그리하여 선배인 나로 하여금 수시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던 아이......

 

이젠 어느 덧 중년이 되었을 그 아이에게 수년 만에 안부 글 몇 자 불쑥, 띄웠더니 쪼로롱- 답글이 온다.

키르기즈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다며, 그곳의 내란 소식, 그곳의 정치적 상황, 그리하여 그곳 사람들의 불행한 삶이, 읽히기 좋은 길이의 문장으로 내 메일함에 차 올랐다. 예나 지금이나 종잡을 수 없는 놈이다.

매스컴으로나 듣던 키르기즈의 이야기가 이리도 가까이서 실감나게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살짝, 현실감을 놓아버리기도 했다.

옛날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항상 날 '죄많은 어린 양'으로 규정하던 그 아이는 지금 어느 조그만 소도시의 '한센인 집단거주촌'에 살고 있다고 한다. 물리치료사였던 그 남편과 함께, 그곳 사람들에게 엄청난 사랑(참기름, 고추, 오이, 가지, 상추 등)을 받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소식을 전하는 발랄한 문장들 속에는 '한센병'에 대한 세인들의 편견을 깨트려버리려는 '사명감'이 그 아이답게 당차게 묻어 있었다.

'종교인으로서의 생활 태도'라고 단정 짓기엔 그 아이의 신념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나 선연한 것이어서, 어줍잖은 비판의 논리로는 그 신념 앞에 무력화되기 일쑤였던 기억이 다시금 오롯하다.

이 다음에 언젠가 만나게 될 날에 그분들의 사랑이 담긴 '참기름' 한 병을 기꺼이 건네겠다는 끝인사에는, 그 아이다운 발랄함과 지금 생활에 대한 행복과 당당함이 분명했다.

 

부끄러움......

그러고보면 오랜 세월, 나는 너무 내 발 앞에만 시선을 둔 채 욕망만 키워왔나보다. 현재 주어진 것들이 모자라다는 생각......이것이 내 안의 욕심에서 비롯되었음을 난 요며칠 그 아이와의 소식을 통해 깨달았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하루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몸부림...  (0) 2010.11.28
...별 총총한 가을 아래 바람이 스친다...  (0) 2010.11.01
내 생에 축구......  (0) 2010.06.23
벌써 1년...여전한 그리움...  (0) 2010.05.18
'무리'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0) 2010.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