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북천에서의 가을 한때였다. 관광용 코스모스밭은 온통 코스모스 무더기여서, 코스모스 특유의 몸짓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코스모스와 반대쪽 길을 걷다 갑자기 시간이 거꾸러진 풍경과 맞닥뜨렸다. 호기심에 살짝, 주렴을 걷고 들어선 자리, 순간, 아득한 블랙홀을 거쳐 수십 년 저쪽에 놓인 듯한 착각...그것은 정말 순간이었다. 진한 다방 커피가 식는 동안 시골 다방 레지와 노닥거리는 3류 드라마라도 재연해 볼 요량으로 인기척을 냈지만, 배달을 나간겐지, 코스모스 축제에 흥을 뺏겼는지, 대답하는 이 하나도 없던 그 가을 북천...그리하여 주인도 없는 낡은 시간의 풍경 한 쪽만 몰래 훔쳐 달아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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