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쓰다
-심 재 휘
어제는 꽃잎이 지고
오늘은 비가 온다고 쓴다
현관에 쌓인 꽃잎들의 오랜 가뭄처럼
바싹 마른 나의 안부에서도
이제는 빗방울 냄새가 나느냐고
추신한다
좁고 긴 대롱을 따라
서둘러 우산을 펴는 일이
우체국 찾아가는 길만큼 낯설 것인데
오래 구겨진 우산은 쉽게 젖지 못하고
마른 날들은 쉽게 접히지 않을 터인데
빗소리처럼 오랜만에
네 생각이 났다고 쓴다
여러 날들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많은 것들이 말라 버렸다고
비 맞는 마음에는 아직
반가움에서 환도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쓴다
우습게도 이미 마음은
오래 전부터 진창이었다고
쓰지 않는다
우산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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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한가운데서 따가운 햇살에 속살을 데인거나 아닌지,
혹은 힘겨운 일상에 근골을 상하지나 않았는지...
근심 걱정이 잦을수록 당신께 소홀해져버린 요즘의 일상이 민망합니다.
사는 게 무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햇살 따가운 날엔 서로가 서로에게 서늘한 그늘 한 채 지어주고,
간혹 비라도 갑작스레 내리는 날이면 서로의 머리 위에 우산 한 채 얹어주는
그 소박한 그리움...
그런 그리움만으로도 일상을 사는 일은 행복일진대...
내 안의 그대...그리고 그대 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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