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전하는 자의 괴로움...>
내 차(흰둥이)를 갖기 전, 난 참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은 벌써부터 제법 너른 차를 몰고 여기저기 쏘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고, 나는 그들 옆자리에 앉아 그들이 운전하는 동안 그저 편안한 자세로 여행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만 늘어놓으면 되었으니까.
그러나 막상 내가 직접 운전을 하게 되면서부터 여행은 때론 고통이었다. 육체적 피곤함은 견딜 수 있다해도 차창으로 스치는 세상 풍경들을 그저 곁눈으로 슬쩍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못 견딜 일이었다. 그나마 혼자 여행할 때면 아무 데나 차를 세우고 맘대로 퍼질러 있기도 한다지만, 일행이라도 있는 여행에서는 그조차 내 맘 같지 않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운전대를 덥썩 넘길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 흘려 보내는 풍경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지금 내 운전습관을 아주 더럽게 만들어 놓았다. 쉴새없이 두리번거리는 습관...남해고속도로의 확장 공사가 한창이던 94년 초여름에 나는 그 못된 습관 때문에 자칫 화물트럭과 정면 충돌을 한 뻔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놈의 습관은 고쳐지질 않는다.
요 몇 해 동안 난 이 못된 습관이 고쳐졌겠거니 여겼더랬다. 그런데 아니었다.
2. 갈림길 앞에서의 고통 : <남해고속도로 : 마산---부산>
우리나라에 맨 처음 뚫린 제 1번 고속도록로인 경부고속도로. 나는 요즘 그 길에 매달린 풍경들에 함뿍 빠져 있다.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부산으로 가는 길엔 진영, 진례 등의 낯익은 이름들이 녹색 간판에 매달려 내 머리 위로 휙휙, 날아간다. 서부산과 북부산으로 나뉘어지는 갈림길 어름에 서면 늘 가슴 한 쪽이 뽀개지는 느낌이다. 몇 해 전, 커다란 덩치에 순박하게 웃을 줄 알던 친구놈이 그 갈림길의 표석에 정면충돌하여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 갈 지 몰랐던 것일까. 길 위에서의 막연함은 그래서 언제나 비극적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막연함. 어느 하나를 선택했을 때 껴안게 되는 두려움과 나머지 것에 대한 미련...결국 삶이 그러한게 아닌가? 늘 양갈래의 길목에서 갈등하고, 아파하고, 때론 주저앉아 버리는...지금 내 삶도 그러한가? 그곳을 지날 때면 난 늘 삶을 생각한다.
아픈 가슴 한 쪽을 틀어쥐고 북부산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실한 물줄기 하나를 만난다. 시골집 앞을 흘러 내린 낙동강이 그렇게 내 발 아래를 지나는 것이다. 장마에 불어난 강물은 시골이나 여기서나 다 붉어져 있다. 그 붉은 강물로 살림을 꾸려가는 듯한 강마을의 집 몇 채들이 강으로 내려서는 나루터에 시퍼런 몸집의 발동선 몇 쪽을 띄워 놓고 있다. 그러나 한 번도 그 발동선들이 물살을 가르고 오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늘 그곳을 지나치는 시간은 '찰나적'이고, '순간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휘어진 강물을 가로질러 꼭 그렇게 휘어진 도로 위에서는 차창을 내다보는 일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가며 요만큼, 오며 요만큼...그렇게 조각조각 퍼즐 맞추듯 끼워넣은 그림이 내 머릿속에 고만한 풍경 하나로 남는다.
3. '물금'에서 건져올린 아련한 기억 한 편--귀신물밥멕이기
<1번고속도록 : 부산---대구---(서울)>
북부산 톨게이트를 지나 대동 톨게이트를 지나면 남양산에 들어서 1번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에 오른다. 요즘 내가 맘을 빼앗긴 또 하나의 풍경은 이 고속도로 곁에 붙어 있다. 대동을 지나 남양산으로 가는 길에 만나지는 풍경. 고속도로엔 이름조차 내걸지 못한 그 작은 풍경에 궁금증이 인 지 한참이다가, 어제서야 고속도로 곁에 나란히 붙은 국도를 훔쳐보며 그 이름을 알아냈다. '물금'. 물금 또한 낙동강의 한 물금을 밟고 선 곳이다. 이쯤에서는 문득 어린 날의 한 때를 떠올린다. 기름기 많은 음식을 먹고 체했을 때 할머니는 내 웃옷을 홀랑 벗기고는 마당에 쪼그려 앉히고, 물밥을 말아 내 앞에 놓고선 머리 위로 칼을 휙휙 집어던지셨다. 그렇게 집어던진 칼이 저만치 그어진 금을 넘어서면 내몸에 붙은 귀신이 물러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물밥을 한 입 가득 물려주셨다. 한참 뒷날에야 그것이 민간에 전해오던 '귀신물밥멕이기(먹이기)'라는 치료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금'을 지나면서 왜 문득 '귀신물밥멕이기'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물금...그리고 물밥, 칼금...전혀 상관없는 그것들이 그렇게 연관되어 떠오르는 것은 단순한 유사음들의 조합 때문이리라. 이쯤되면 내 직업병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다.
4. 마음의 이쪽과 저쪽--<무동리 막다리-'무동교'>
1번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다보면 언양과 울산을 잇는 16번 고속도로를 만난다. 나는 훌쩍 16번 고속도로로 옮겨 앉는다. 언양에서 울산으로 가는 이 16번 고속도로는 남해고속도로나 경부고속도로처럼 번듯하지가 않다. 여기저기 패인 곳도 많고, 커브길도 휘어진 각도가 작아 속도를 한참 줄여야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다. 시멘트로 덧칠된 도로표면은 차창을 꼭꼭 여미어도 그 반동음이 소란스러워 마음 편치 않은 날이나, 몸이 고단한 날엔 귀마개라도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12Km 남짓한 이 길이 좋아지는 건 가는 길에 보호담 너머로 만나는 자그마한 강변 마을 때문이다. '무동리'. 무동리는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사실 강이라고 하기엔 좀 규모가 작고, 하천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제법이다)으로 제법 실해 보이는 막다리를 길게 내걸고 있다. 철구조물 위에 그저 시멘트로 마감을 했을 게 분명한 다리이지만, 그 다리 뒤편으로 휘어져 오는 강의 품세와, 그 강물이 키웠을 풀나무들이 자욱하게 우거진 산세는 이 무덤덤한 다리를 아주 운치있게 꾸며주고 있다. 그래서 멀리서부터 고속도로 너머로 내다뵈는 그 다리는 무척이나 순하디 순해 보인다. 이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무동리 사람들은 분명 몇십 리를 걸어걸어 범서로, 양산으로, 언양으로 오갔을 터이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고된 발품을 줄여주었을 그 무동교는 그래서 볼 때마다 한없이 착해 보인다.
가까운 날에 일부러 길을 둘러 가더라도 담 너머 '무동교'며, '물금'의 강변 마을을 다녀볼 작정이다. 필시 무동리 사람들도 다리 만큼이나 착하게 삶을 꾸리고 있을 터이고, 물금의 그 강변 사람들 또한 양 눈썹 사이 강물같이 그윽한 주름을 새기고 있을 터이다. 나는 그렇게 착한 사람들의 숨소리를 듣는 일이 즐겁다. 그래서 운전 중에 두리번거리는 이 더러운 습관이 미치도록 좋아질 때도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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