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계사 쪽에서 내려다 본 풍경)-파노라마 촬영
법계사에서 운행하는 버스(성인 2천원)를 타고 중산리에서 약 5분 정도 오르면 '순례길'이라는 현판 아래로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이 등산로들이 언제 다듬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계절마다 드나들던 20년 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골짜기를 건너는 구름다리도 낯설었고, 비탈길에 가지런한 나무데크 계단도 옛모습은 아니다. 한발 한발 기억을 더듬어도 무엇 하나 선명해지는 기억이 없었다.
낯선 것은 산풍경만이 아니었다. 산을 오르내리는 모든 사람들의 옷차림은 거의 전문 산악인 차림! 예전엔 청바지에 셔츠 하나, 운동화만으로도 기죽지 않았는데, 이번 산행엔 왠지 자꾸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변변한 등산복도 없이 난 그저 짧은 면바지에 셔츠 하나, 운동화 차림이 전부였다. 함께 간 일행들조차 자기들의 여분 장비를 서로 건네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듯한 느낌(우이쒸~! 풀세트 충동구매가 울컥, 일었다.)
함께 간 일행 중 하나가 포인트 하나를 찾았다. 우리 중에 나이가 제일 어림에도 늘 점잖기만 해 오히려 형들을 눈치보게 하는 막내. 산에 가니 완전 달라진다. 작렬 멘트 연발에 몸개그까지! 이 포인트에서도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등산업체에서 분명 화보 촬영 제의가 올거라 확신한다. 산에 오면 사람이 이렇게도 달라진다. 꼭 좋은 쪽으로만 변하는 건 아닌가보다.ㅎㅎ |
근데, 더 문제는 막내의 포즈를 본 내가 참지 못하고 기어이 그 포인트에 꾸역꾸역 올랐다는 사실! 영화 <와호장룡>의 한 장면처럼(거기선 대나무였지만) 나뭇가지 위에서 바람에 살랑, 살랑, 흔들리는 장면을 연출해 보고 싶어서 이리저리 각을 맞추노라니 일행들의 비난이...으~~하마터면 정상에 오르지도 못하고 낙오할 뻔 했다.
고사목은 지리산을 대표하는 풍경 가운데 하나이다. 어렴풋이 옛 기억엔 노고단 쪽에 고사목 군락지가 있었던 것같은데... 아무튼 생각지 못하고 오르다 만난 고사목 한 채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 높은 고산지대에서 결국 솜통을 틔우지 못하고 말라버린 나무 한 채를 보며, 사람들의 생각들은 어떠했을까? 그러는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던가. 사람이 한 생을 산다는 것...요즘 모든 일에 자꾸 조바심을 내는 것은 내 남은 생이 살아온 날보다 더 짧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하고싶은 일은 되도록 하자는 생각. 아무 준비없이 덜컥, 지리산행을 감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어쩌면 내 생에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를... 내 스무 살의 기억이 아직 여기저기 선연하게 남은 산. 첫사랑과 이별하고 그 힘겨움을 견디기 위해 달랑, 모포 하나, 침낭 하나 들고 밤길을 올랐던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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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바위 아래 짐을 풀고 스산한 가을밤을 두려움으로 견뎠던 날이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에 온 신경이 이저리로 우르르, 몰려 다니던 그날 밤. 난 헤어진 첫사랑을 단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죽을 것같던 실연의 고통이 정작 공포 앞에선 아무 것도 아닌 게 된다고. 그때 그 사랑을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다고까지 생각했던 그 결의에 찬 다짐들이 얼마나 유치찬란하고 허망한 것이었던가를. 산에서의 사흘을 계획하고 올랐지만 나는 그 공포때문에 결국 하루를 채우지 못하고 다시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짐짝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어느 낯선 도심지를 배회하다 집으로 돌아갔다. 닷새 뒤 머리를 깎고 입대를 하던 날, 내 등 뒤의 텅빈 길을 보면서도 나는 울지 않았다.
<로타리산장>에서 <개선문>까지는 약 1.2Km이다. 쉬엄쉬엄 올라도 1시간 반이면 넉넉하다. <개선문>이 옛날에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옛날에는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하여, <통천문>이라는 이름의 바위가 하나 있었던 것같은데, 이게 그것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함께 간 일행에게 '통천문' 얘길 해줬는데, 다들 "통천문은 언제 나오는거야?"라고 물어오는 통에 당혹스러웠다. 우쒸! 누가 바꿨어~? |
정상으로 오르는 곳곳에 <반달곰을 만나지 않으려면>이라는 경고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지리산의 명물로 알려져 있는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위협적인 개체로 번식했을 줄은 몰랐다. 일행들은 "곰을 만나면 죽은 척 해야 하지 않나?" "나무에 올라가야지"라며 동화같은 얘기들을 제법 진지하게 해댔다. 나는 은근, 곰 한 마리 만나는 상상을 하며 남은 길을 올랐다. 산을 다 내려올 때까지 곰 그림자도 못 봤는데, 그제서야 일행들은 "아깝다~ 만났으면 한 마리 끌고 오는 건데..."라며 뒷말을 삼켰다(으~~비겁한~^^). 근데 그날 뉴스에 진짜 '벽소령 대피소'에 곰이 나타나 등산객의 침낭을 찢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휴~".
중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 측에서 제공하는 흙 한 줌을 배낭에 넣고 올랐다. 등산용 스카프 한장과 함께 제공된 이 흙을 천왕봉 정상에까지 져나르면 이 흙을 자루에 모아 유실되는 흙들을 메운다고 했다. 좋은 일이라 여겨 기꺼이 배낭에 넣어 올랐다. 그러고보면 우리 일행의 신발에 묻어 온 흙만으로도 한 줌은 넘지 싶었다.
<꺄~! 드뎌 정상, 천왕봉이닷!!>
'1915M' 정말 여길 올랐다니! 일행들 모두가 믿기지 않는 이 사실에 흥분했다. 천왕봉 표지석 앞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등산객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고 있었다. 어떤 이는 새치기를 하고, 어떤 이는 뒷사람 배려없이 한 장이라도 더 찍으려고 이저리 포즈를 바꾸며 시간을 끌었다. 그러자, 뒤에서 어김없이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1915M'에 올라서도 인간들을 따라 오른 지상의 욕심들이 흉하게 산공기를 더럽히고 있었다.
정상 아래, 적당한 터를 잡고 가져온 점심을 먹었다. 문득, 옛 기억이 오롯이 떠올랐다. 12월 31일, 자정쯤에 중산리를 출발하면 새벽 6시쯤 천왕봉 꼭대기에 이른다. 그때부터 약 1시간 15분 정도를 발을 동동거리며 새해 첫날의 아침해를 기다린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천지개벽의 그 믿기지 않는 풍경을 나는 1995년 1월 1일에 만났다. 꼬박 20년 전의 기억이다. 해가 떠오를 때 천왕봉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일제히 해맞이 노래를 부르며, 더러는 울고, 더러는 웃고, 그렇게 낯선 사람들이 서로의 술잔을 채워주며 같이 붉게 물들던 날이었다. 이번에 산을 오르며 마주친 그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어쩌면 그 해 나와 함께 그 정상에서 붉게 젖었던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인연'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한다. 사실, 이번 산행을 마지막으로 나는 이 일행들과의 인연에 끝을 맺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인연'들에 더 옹차게 묶여 왔다는 생각. '인연'은 사람의 뜻 너머에 있음을 다시 깨닫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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