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 떠돌기...

(부산) 이기대에서 용호마을까지...

naru4u 2013. 4. 8. 00:50

 

 

  십여 년 전부터 수시로 드나들던 '이기대'공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탈진 산길이 위태로워 바다로 내려가는 길에선 은근히 종아리 힘줄이 돋던 때였다.

비탈진 벼랑끝에선 불 밝힌 '광안대교'가 발 아래 환했다. 다리 너머 먼 바다 끝에선 달빛이 우수수, 흩어지고 있었고, 그 달빛 위로 오징어잡이 배들이 환하게 보름달같은 집어등을 내어걸고 있었다.

그리고 몇 해...

이기대는 바다 가까이 계단을 내려 촘촘히 말뚝을 박고 길을 이었다. 두어 시간 바다를 끼고 걷는 말뚝길엔 햇살이 눈부셨고, 그 눈부신 햇살 속에 오두마니 '오륙도'가 엎드렸다. 밀물에 여섯 개가 되고, 썰물에 다섯 개가 된다는 섬의 오랜 내력이 내겐 한참 동안이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이름만으로 늘 신비로웠던 섬이다. 그 섬이 저만치 햇살 속에 환하다.

 이기대에서 오륙도를 끼고 바닷길을 한참 오르내리면 용호마을에 닿는다. 60년대 말, 세상의 손가락질을 피해 이 구석진 갯가로 숨어든 한센병 환자들의 삶터였던 곳이다. 푸른 바다 위로 햇살이 환한 날에는 그마저도 죄스러워 함부로 나다닐 수 없었다는 이 한많은 갯가 마을이 지금 텅, 비었다. 아니, 그 자리 다시 자본의 뾰족한 욕망이 무수한 마천루들을 쌓아 올리고 있다. '해양생태공원'을 내걸어 인간의 가벼운 욕망을 부추겨 올린 이 아파트들 때문에, 수십 년 한많은 생으로 힘겹게 버텨왔던 목숨들이 어디론가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아니 숨어들었다. 이 잔혹한 약탈의 현장에 '관광'의 이름이 덧씌워져 이방인들을 위한 편의시설들이 여기저기 한창 공사중이다.

새해 첫날 아침을 나는 이 길을 걸었다.

질퍽한 황토가 설움처럼 쩍,쩍, 신발 밑창에 들러붙는 날이었다. 흩어진 설움소리를 신발밑창으로 전해듣던 그 날에 나는 신년계획이라는 걸 생각할 수 없었다. 다시 한 해, 그저 내 안에 깃든 천박한 욕망을 다독여야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