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좋은 문장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문장들이 전문 글쟁이의 것이 아닐 땐, 그 긴장감은 시기와 허탈감으로 변한다. 심인보의 <곱게 늙은 절집>(지안, 2007)은 그런 문장들 가운데 하나다.
밑줄 그어가며 읽던 이 책을 제자에게 물려주고 나서 한동안 허~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쉽게 구할 수 있겠거니 하고 선뜻 물려준 책이었다. 그런데 구하기 쉽지 않았다. 대개의 인문학 서적들이 그러하 듯, 이 책 또한 그리 많은 초판은 아니었던가보다. 인터넷과 헌책방을 수시로 뒤적였지만 끝내 찾지 못하다가 리모델링한 구도심지의 아직 남겨진 옛 서점 구석에서 이 책을 구할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카운터에 물었는데, 아가씨가 선뜻 책을 가져다 준다. 그때의 그 짜릿함이란! 인터넷 헌책방에 세 배의 가격으로 올라 있던 걸 보았었는데...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횡재한 기분!!
이 책의 저자는 공예과를 나와 전문 디자이너의 길을 걷는 이다. 그럼에도 나를 비롯한 어중잽이 글쟁이들보다 훨씬 좋은 문장을 부릴 줄 안다. 그의 문장들 앞에서 넋을 놓고 앉았던 그 시간들이 물컹, 기억속에 베어 물린다.
더구나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그가 문장으로 옮겨 놓은 곳곳의 절집들이 내가 한때 길 위를 떠돌며 마음을 부리고 시간을 내려놓았던 곳들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명쾌하지 못했던 20대 초반의 막막함이 봄날의 긴 햇살 속에서 환해지던 <장춘사>...
세상 앞에 분노하다가도 제 풀에 지쳐 드러누웠던 <운주사>...
지금도 알싸한 옛 사랑같은 <내소사>의 전나무길...
무량수전 처마끝에 서서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을 눈으로 핥아대던 어느 해 겨울의 <부석사>
'뒤깐'이라 써진 현판을 보고 불쑥, 주지스님이 궁금해지던 <선암사>...
스무 살, 혹은 서른 살 어름에 나돌던 절집들이 모두 이 안에 오롯하다.
그러고보면 마치 옛사랑처럼 오래 잊고 있었던 이름들...
서서히 가을빛이 고이는 지금, 나는 다시 길 위로 나설 것이다. 그 길 위에서 나도 누군가 설렐 수 있는 문장 몇 줄 베어 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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