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허수경님의 시, <혼자 가는 먼 집>

naru4u 2014. 9. 2. 20:41

<혼자 가는 먼 집>

 

                                                                                            *허 수 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

 

E. 프롬은 인간의 '원죄'를 '고독'으로 풀이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더 이상 에덴에 머물지 못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아담과 이브에겐 하나님의 뜻을 의심하고 거스를 수 있는 '지혜'가 생긴 것이다. 그들이 제일 먼저 서로의 몸을 가린 까닭이 그러하다. 하나님이 만들어 준 동일체가 어느 날, 서로 다름을 인식하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그 자체로 모자란 반쪽이 되었다. 끊임없는 외로움은 거기서부터 비롯된다. 잃어버린 나의 반쪽에 대한 그리움. 그러나 어찌 그것을 온전히 채울 수 있으랴. 잃어버린 채, 외로운 채, 그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생이리라.

그래서 기꺼이 외로워지자. 그 외로움이 신으로부터의 구속을 벗어난 '자유'의 대가임을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