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 너무 맑아 잠시 들에 나갑니다
모처럼 오시는데 서운함을 어쩌지요
굳이 날
찾으려거든
바람 끝으로 오시지요
-김영철님의 <마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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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 말, 고종은 당대 유명한 화가인 소치 허련(許鍊·1809~1892)을 골탕 먹이려고 그에게 춘화(春畵) 한 점을 그리라 명했다. 얼마 후 허련이 그려 올린 그림에는 외딴집 섬돌 위에 남녀의 신발 한 쌍만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환한 대낮, 문 닫힌 방 안의 풍경이 저마다의 상상 속에 무궁무진하게 살아났다.
이 시에서는 저 닫힌 문 안이 궁금한 게 아니라, 온 들판을 ‘마실 댕기는’ 집 주인의 바깥일이 궁금해진다. 문고리에 질러 둔 쇠막대 하나가 만든 여백이다. 이렇듯 시는 ‘생략’을 통해 ‘여백’을 만들고, 그 여백에서 무수한 의미들을 빚어내는 갈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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