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내 삶에 깃든 또 하나의 생을 위하여...

naru4u 2007. 8. 11. 14:33
# 내 안에 깃든 생을 위하여……


#-1. 병원에 들다.

돌이켜보면 2월의 마지막 날은 온통 설렘과 두려움이었다.

 

오전 9시...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의 표정이 굳어진다.

10시...

내진 받는 아내의 고통스러운 비명을 커텐 너머로 들었다.

뱃속의 생을 맞이하기 위한 고통은 오롯이 산모의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11시...

입원실에 든 아내는 평온한 모습이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애써 두려움을 떨치려는 모습이 안쓰럽기조차 하다. 슬쩍,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곁눈질하던 그 때 나는 떨고 있었던가, 설레고 있었던가...

12시...

애기와의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아내는 밋밋한 병원밥을 열심히 삼켰다. 벌써, 아내의 모습에서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보여주는 '사랑'이라는 것을 보는 듯싶다


                                     

 

#-2. 오후 1시, 유도 분만을 하다...

통증에 비명을 지르는 아내의 눈빛이 온통 두려운 빛이다. 오전의 그 기다림, 설렘은 어느 새 없다. 그저 두려움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


오후 3시...

아이의 호흡이 불안하다. 심장박동기 모니터엔 아이의 박동수를 표시하는 하트가 불안하게 깜빡거린다. 불규칙하게 오르내리는 수치를 보면서 아내도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아무 것도 더듬을 수 없는 저 뱃속의 아이도, 먹먹한 어둠 속에서 두려운게다.


#-3. 오후 5시, 2차 유도 분만 시도...

끝내 아이의 몸이 저 뱃속의 물웅덩이를 벗어나지 못하나보다. 아이도, 아내도, 나도...숨이 가쁘다...의사는 수술을 권한다...장갑을 벗고 병실을 나서는 의사의 뒷모습이 참 냉랭하다 싶다.

 

 6시...수술실에 들다...

뽀얀 유리문, 수술실 문 너머로 아내를 들여보냈다.

길게 뻗은 복도에서 손 한 번 잡아주고 나는 문 밖으로, 아내는 문 저 안쪽으로 갈렸다. 두려움과 통증으로 범벅이 된 아내를 제대로 배웅도 못한 채 나는 멀거니 유리문 이쪽에 서서 버거운 시간을 버틸 뿐이었다.


경황없이 문 밖으로 밀려나 앉은 다음에서야, 아내에게 해주지 못한 말들이 마구마구 떠올랐다.


                                       



#-4. 오후 6시 31분, 드디어...


6시 31분...

드디어 아내의 이름이 불렸다.

발목에 탯줄을 감고 있었다는 아이는 너무나 태연한 표정으로

내게 첫모습을 보였다. 제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그 6시간 30여분의 시간을

아이는 씩씩하게 잘 견뎌 주었다.

그러다 이내, 너무 태연한 그 모습에 살짝 얄미움이 끼어든다.

이놈 땜에 울 마누라가 그리 떨었는데... 


짜슥이~...하지만...ㅋㅋㅋ...반갑다.^^

 

#-5. 저녁 7시 30분, 아내를 만나다...


 7시 30분...

아내는 두 다리에 감각을 잃은 채 멀거니 나를 올려다본다.

그렁그렁한 눈물이 끝내 뺨을 타고 흘러 내 손등으로 번진다.

그 옆에서 대견한 듯 보고 있던 장모님 눈도 젖었다.


  "오빠...배 가르는 소리가 들렸어..."


  평생 그 소리가 아내의 가슴에 남으리라. 얼마나 무서웠으랴.

  아내의 손을 잡고, 수술 전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손끝으로 밀어 넣었다.

내 손등에 옮겨 젖은 아내의 눈물처럼, 내 안의 그 말들도 조금씩조금씩

아내의 놀란 가슴 안으로 스며들어, 가쁜 숨 편안하게 결 고르기를 바라며...


#-6. 밤 12시, 고요 속의 달빛 한 줄금...

밤 12시...

아내는 잠이 들었다.

움직일 때마다 아랫배 전체가 묵직한 통증으로 고통스럽다 했다.

 

올려다 본 밤하늘엔 정월 보름을 갓 넘긴 달이 뭉툭하니 부풀었다.

열에 달 뜬 아내의 몸도 달 모양으로 둥글게 부풀었다.

어둔 복도를 걸어 내려 다시 수술문 앞에 서 본다.

저 뽀얀 유리문 앞,

그 시간에도 생을 준비하는 기다림들이 달빛에 뽀얗게 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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