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머리를 깎으며...

naru4u 2007. 8. 23. 23:10
여러 달 길렀던 머리를 깎았다.
처음엔 그저 지저분한 끝선만 고를 생각이었는데, 깎다가 문득 그넘들이 금세 자라 또 나를 귀찮게 할거라는 생각에 바싹 밀어올렸다. 머리 깎던 아가씨는 두번 일을 시켜서 그런지 내내 불퉁한 표정이었다. 가위를 든 채 내 뒤통수를 노려보던 아가씨의 눈매가 내내 불편해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랬더니 더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속으로 '이 아가씨 지금 표정이 어떨까?', '혹시 혀를 쑥 내밀거나, 너 죽을래?'라는 표정으로 가위를 내 머리에 꽂는 시늉을 하는 건 아닐까?'......온갖 생각이 다 들어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 아가씨는 여전히 아까의 표정으로 굳어져 있다.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어 불편한 건 오히려 나였다. 할 수 없이 이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맘을 먹는다.

(최대한 겁 먹은 표정, 또는 비굴한 목소리로...)
제가요, 머리를 어떻게 깎을지 몰라 늘 고민이거든요.
저한테 맞는 스타일이 있긴 한건가, 싶기도 하고 또 뭔가 크게 변화를 주고 싶기도 한데
남자들은 그저 짧게 깎거나 색깔을 확- 입히거나 하는 수 밖에 없잖아요?
제가 귀찮게 했죠? 미안해요. 우짜든가 이뿌게만 깎아주세요....주절주절...

이쯤되니 아가씨 표정이 한결 나아보인다. 그리곤 제법 친한 척을 하며 한 수 가르쳐 주기도 했다.
"미장원은 한 군데만 정해놓고 다니는 게 좋아요. 그래야 자기 스타일을 찾을 수 있거든요."

"네~, 근데 다음에 오면 누구라고 하며 아가씨를 찾아야 하나요?" 했더니,
머리를 깎다말고, 명함을 한 장 꺼내준다.
표정은 처음 나를 맞을  때의 얼굴로 돌아가 있다.

침묵하는 일은 이렇게 서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다.
한 마디, 한 마디, 또는 조금만 비겁(?)해지면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좀더 부드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처음 한 마디가 어렵다. 그 한 마디를 내뱉지 못하면 끝내 그 사람과는 불편한 관계로 끝나버릴지 모를 일이다.
그러고보면 내가 살아온 지난 날 동안, 그 한 마디를 못해 불편하게 끊겨버린 인연들이 많다.

왜 항상 깨달음은 늦게 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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