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떠난다는 것에 대하여...

naru4u 2019. 10. 15. 16:34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조국 얘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조국 얘기로 하루를 마감하는 국면이 67일 만에 끝났습니다. 그 동안 우리 정치, 지독하게 모질고 매정했습니다. 상대에 대한 막말과 선동만 있고, 숙의와 타협은 사라졌습니다. 야당만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정치인 모두, 정치권 전체의 책임이지요. 당연히 저의 책임도 있습니다.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허나 단언컨대, 이런 정치는 공동체의 해악입니다.


특정 인사에 대해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고 인격모독을 넘어 인격살인까지, 그야말로 죽고 죽이는 무한정쟁의 소재가 된지 오래입니다. 이 또한 지금의 야당만 탓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도 야당 때 그랬으니까요. 그러나 피장파장이라고 해서 잘못이 바름이 되고, 그대로 둬야 하는 건 아닙니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정치는 결국 여야, 국민까지 모두를 패자로 만들뿐입니다.

민주주의는 상호존중과 제도적 자제로 지탱되어왔다는 지적, 다른 무엇보다 민주주의자로 기억되고픈 제게는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상호존중은 정치적 상대방을 적이 아니라 공존해야 할 경쟁자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제도적 자제는 제도적 권한을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정치의 상호부정, 검찰의 제도적 방종으로 망가지고 있습니다. 정치가 해답(solution)을 주기는커녕 문제(problem)가 돼버렸습니다. 정치인이 되레 정치를 죽이고, 정치 이슈를 사법으로 끌고 가 그 무능의 알리바이로 삼고 있습니다. 검찰은 가진 칼을 천지사방 마음껏 휘두릅니다. 제 눈의 들보는 외면하고 다른 이의 티끌엔 저승사자처럼 달려듭니다. 급기야 이제는 검찰이 정치적 이슈의 심판까지 자처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저는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국회의원으로 지내면서 어느새 저도 무기력에 길들여지고, 절망에 익숙해졌습니다.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우리 정치를 바꿔놓을 자신이 없습니다.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기조차 버거운 게 솔직한 고백입니다. 처음 품었던 열정도 이미 소진됐습니다. 더 젊고 새로운 사람들이 새롭게 나서서 하는 게 옳은 길이라 판단합니다.

사족 하나. 조국 전 장관이 외롭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에게 주어졌던 기대와 더불어 불만도 저는 수긍합니다. 그가 성찰할 몫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인 욕심 때문에 그 숱한 모욕과 저주를 받으면서 버텨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 자리가 그렇게 대단할까요. 검찰개혁의 마중물이 되기 위한 고통스런 인내였다고 믿습니다. 검찰개혁은 꼭 성공해야 합니다.

아직 임기가 제법 남았습니다. 잘 마무리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9년 10월 15일, 국회의원 이철희

[출처]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습니다!】|작성자 assembly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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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연명하던 때가 있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때였다. 이 시간을 견디고나면 오래 꿈꾸었던 대학 교수의 길이 내게도 열릴 것이라 믿고 살았던 까닭이다. 그때 내가 흠모하던, 아니 내 주변 모든 이들이 흠모하던 철학과 교수님 한 분이 홀연히 학교를 그만두셨다. 학교를 떠나시던 날, 그 교수님께서 보따리 하나를 내게 주시며,

"차선생~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대학을 벗어나야 돼"

라는 선문답같은 문장 하나를 툭, 던져주시곤 가셨다. 집에 와서 풀어본 그 보따리 안엔 옛날 지역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내셨던 그 교수님의 선대인께서 남기신 유품들 가운데 지역과 관련된 서적 몇 권이 들어 있었다. 흥감하기 짝이 없는 그 유품들 앞에서 나는 한동안 어리둥절했던 듯싶다.

  왜 이걸 내게 주셨나...

  왜 대학 밖에 있어야 제대로 된 학문을 할 수 있나...

  세월이 한참 지나서, 대학에 뜻을 접고 생활 공간으로 나온 뒤에야 그 남기신 말씀의 속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오늘 이철희 의원의 사퇴 기사를 접하고 문득, 그 교수님이 떠올랐다. 이철희 의원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아쉽지만, 나는 단번에 그 마음을 이해하겠다.
  그대 잘 가라~. 꼭 여기가 아니어도 거기!  어디든 해야할 일이 있다면 오직 그 마음 하나로만 꼿꼿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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