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 떠돌기...

문득, 산이 그리웠다...강천산(剛川山, 전북 순창)

naru4u 2010. 2. 9. 23:01

 

강천산(剛川山, 전북 순창)

 

   누군들 젊은 날을 피끓게 살아본 이라면, 산에 미쳐 보지 않은 이가 누가 있으랴. 돌이켜 보는 기억에 내 피가  그리 뜨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한 때에 나도 산에 미쳐 살았던 때가 있었다.

 

   매주, 아니면 매달, 둘이서 혹은 여럿이서 그렇게 산엘 올랐다. 동서로, 남북으로, 가리지 않고 가로지르고, 오르내렸던 그 때의 기억이 본성처럼 꿈틀거렸던 것인지, 요며칠 문득, 산이 그리웠다.

 

   몸통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오롯이 비를 맞고 지리산 능선을 절뚝이며 넘던 기억에 시큰, 무릎이 아파오기도 했다. 등산용 칼 하나를 움켜쥐고, 모포에 침낭 하나로 초가을의 스산한 밤을 바위 아래서 견디던 그 무지했던 객기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선암사 뒤를 돌아 오르던 조계산의 서걱이는 댓숲을 떠올리며 선득해진 목덜미를 손으로 스윽~ 쓸어보기도 하고, 금산에서 가야산으로 능선을 따라 오르내렸던 스물 살 초입의 어느 겨울 산행을 기억할 때쯤엔 쪼로록~, 그때와 꼭 같은 배고픔이 밀려오기도 했다.

 

   "이쯤 되면 가야 한다. 더 머뭇거리지 말자." 벼르고 벼르던 마음이었다......그렇게 마음날을 벼리고 나선 길에 비가 뿌렸다. 여물지 못한 마음이 출발 때부터 빗길에 미끄러졌다. "이 빗속에 산을 제대로 오를 수나 있을까", "그냥 비 내리는 풍경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나 하다 올까"......미끄러지는 마음을 추켜 세워 못을 박아준 이름이 '강천산'(剛川山, 전북 순창)이었다. 처음 예상보다는 멀어진 목적지였지만, 비 오는 날의 풍경에 취할 만하다는 안내말에 이끌렸다. 그리고 돌아보지 않았다. 전북으로 가는 길 내내 비가 뿌렸고, 나는 그 빗속에 피어오르는 대지의 안개와 산들이 뱉어내는 운무를 먼 발치로 흘리며, 점점 부풀어 올랐다.

 

 강천산은 순창군에서 공을 들인 군립공원이다. 산과 계곡, 그리고 그 사이 물줄기가 이저리 펼치고 휘어 들어, 그 품새가 여간하지 않았다. 빗길이라 사람소리 소란하지 않은 것이 좋았고, 그 고요함 속에 빗소리, 물소리, 폭포소리...간간이 벼랑에 매달린 얼음장 녹아 떨어지는 소리 들이 얕은 산골짝에도 쩌렁쩌렁해서, 도회지에서 무뎌딘 오감이 모처럼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사진 왼쪽 주황색 설치물은 산과 산을 이어주는 '구름다리'(현수교)이다. 산세에 비하면 제법 높고 긴 터라, 온전한 맘으로 오가기엔 쉽지 않다. 다리 중간쯤부터는 흔들림이 심해, 어지간한 사람들은 감히 아래를 내려다 보지 못한다.

  사진 가운데는 계곡을 따라 걸어오르는 길이다. 산행이라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편한 길이다. 날이 좋을 때는 맨발로 걷게끔 손을 보아두었고, 길 곳곳에 심심치 않은 풍광들과 시설물들이 오감을 즐겁게 한다.

  그 길 오른쪽으로는 산비탈을 따라 친환경 목책길을 마련해 두었다. 눈이 많은 동절기에는 아이젠으로 인한  훼손을 우려해 개방하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아래서 올려다 본 목책길은 제법 우람한 숲 사이로 마련되어 있어 봄날부터는 산림욕장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매표소에서 표(어른 1천원)를 끊어 산으로 걸어들면금세 길 한 켠으로 우뚝한 벼랑이 산세를 가늠하게 해준다. 더구나 깊은 산에서만 볼 수 있으리라 여겼던 폭포 줄기가 평탄한 길 옆에서 꼿꼿하다. 이 산을 처음 찾은 이라면 누구나 "이건 의외다"라는 생각을 할 듯싶다. 이 병풍폭포는 '그 아래를 걸어 지나면 이승의 죄를 씻을 수 있다'는 오랜 이야기를 두르고 있다. 요며칠 사이의 추위때문인지, 산골짝 사이 바람 때문이었는지, 주르륵, 흘러 내린 물줄기가 벼랑 아래서 켜켜이 얼어 쌓였다. 물줄기 채 녹기 전에 눈이 내린 듯, 눈 쌓인 얼음뭉치의 생김생김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구장군(九將軍) 폭포

  산과 산을 잇댄 구름다리를 지나 다시 계곡을 물 따라 걸어 오르면, 이번엔 왼편에 120미터 높이의 물줄기가 후두둑, 쏟아진다. '구장군 폭포'다.

  마한시대, 혈맹을 맺은 아홉 명의 장수가 수세에 몰려 여기까지 밀려 자결을 결심했다가, '이럴바엔 죽을 때까지 싸워보자'는 각오로 전세를 뒤집었다는 옛 이야기가 물줄기 올올이 배어 든 곳이다. 폭포 줄기가 흩어놓은 물벼락들이 여기저기 절벽에 얼음뭉치로 굳었다. 그 굳센 얼음덩이 사이로 120미터 짜리 폭포가 몸집을 줄여 혹한의 겨울을 버텨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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