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햇살 속에 숨겨진 우리 생의 좌표.
칸에서 불어온 ‘전도연 바람’이 애초 ‘밀양(密陽)’에 대해 시들해 하던 관객들의 겨드랑이를 살짝 들어올리는가 싶더니, 이내 가라앉고 마는 분위기다.
처음엔 같은 날 개봉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캐러비안의 해적3-세상의 끝에서>와의 세 다툼에서 어느 정도 밀릴 거란 게 예상됐었지만, 기대보다 훨씬 빨리 밑을 보인 것 같아 씁쓸했었다. 그나마 칸에서 불어온 ‘전도연 바람’이 슬쩍 뒤를 밀어준 탓에 제작자들은 ‘손익분기점’을 넘겼을 것 같다. 제작사 측에서 이후 마케팅에 좀더 뒷심을 발휘했더라면 전도연 바람을 탄 밀양의 햇볕 한 줌은 땡볕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도 잠시, 이번엔 녹색 괴물이 밀양의 앞길을 막아섰다. 6월 6일 개봉한 <슈렉3>은 10여일이 지나도록 부동의 1위를 고수했다. 국수적 성향을 지닌 나인지라, <밀양>이 아무런 현실감도 없는, 그렇다고 제대로 된 ‘판타지’라고도 할 수 없는 <캐러비안의 해적3>이나 <슈렉3> 따위에 눌려 숨을 헐떡이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밀양>은 한 줄금 햇살에서 시작되어 한 줄금 햇살로 마침표를 찍는 영화다. 그 햇살 속에 들앉은 주인공은 ‘신애(전도연)’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고, 우리들 모두이기도 하다. ‘운명’이란 것에 도리질 치다가도 극한의 상황에선 결국 누군가에게 손을 뻗어 ‘구원 받기’를 바라는 군상(群像). 그러다 기대와 어긋난 결과 앞에선 “거봐, 하느님이란 게 어딨어?”라며 쉽게 등을 돌려버리고 마는……. 그게 신애고, 나이고, 우리 모두들이지 않은가?
절망적 상황에서 살짝 ‘구원’의 손끝을 잡고 “아, 그래 난 구원받았구나”라며 안도할 즈음, 어김없이 우리들 일상은 또 다른 절망에 맞닥뜨린다. 그래서 우린 “그래, 애초 하늘이란 게 어딨어. 운명? 웃기지 마. 삶은 스스로 만들고 가꾸어 가는 것이야.”라며 금세 운명 앞에서 도리질 치지 않는가! 신애는 그 운명 앞에 스스로 등 돌리는 인물이다. 밀양에 내려앉은 신애를 보면서 우리 자신의 일상을 찬찬히 되짚어보자. ‘절망’과 ‘구원’의 이차방정식 위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좌표를 한 번 쯤 짚어보게 하는 영화. 그게 이창동 감독이 밀양의 햇살 속에 숨겨둔 코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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