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 떠돌기...

바다에서 멀어진 7번 국도(1)...

naru4u 2017. 8. 13. 02:34

 언제부터인가 여행이 번거로워졌다. 가야할 곳과 먹을거리를 미리 정하고 잘 곳은 미리 선불 결제를 해서 반드시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야만 하는 일정. 마치 좌표점을 찍어 놓고 그대로 따박따박, 발자국 찍 듯 한 치의 빈틈없이...치밀하게 기획하고, 그에 맞춰 완벽하게 수행해야 하는 프로젝트같은 여행...

 문득, 내 스무 살의 여행이 떠올랐다. 아무 계획없이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겁없이 길 위로 나섰던 그때...그 길 위에선 모든 게 설렜고 모든 시간이 행복이었다.

 그 행복과 설렘의 시간들이 아직 7번 국도엔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최근 7번 국도는 새로 자동차 전용 도로를 만드는 바람에 많은 구간에서 바다를 멀리 떼놓고 말았다. 내비게이션은 눈치없이 자꾸 새로 난 편리함만을 욕망한다. 과감히 내비를 끄고 지도 한 장으로 길을 찾는다. 가다서다를 반복해 가며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다는 그 길 위에 올라섰다. 그 순간, 설렘이 밀려왔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그 길 위에선 내 안의 많은 것들을 흩을 수 있길 바라며...


 낯선 길모퉁이에서 속도를 늦출 때마다 차창 너머로 파도소리가 맘을 긁는다.

 화진포를 지나다 먹구름 더미 한 떼를 만났다. 하늘이 절반으로 갈라진 느낌...흐린 바다는 흐린 대로 운치 있다.


 그 흐린 하늘 아래, 중년의 사내 하나 갯바위 위에 위태롭게 샀다. 낚시를 잘 몰라 이 파도에 고기가 잡히는지 궁금했다. 문득, 저 보이지 않는 시간을 외롭게 견디줄 아는 저 강단을 배우고 싶었다.


 강구항을 지나다 차창 너머로 다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처음 본 다리에 맘을 뺏겼다. 중앙분리대가 한참이나 가로막은 길을 다시 되돌아 바닷길을 찾아 내렸다. '해상다리'라 붙여진 이름과 바다로 길을 돌린 그 운치가 어울리진 않았지만, 명품을 흉내 낸 짝퉁 외래어보단 차라리 낫다는 생각!

 

 <고래불해수욕장>은 동해의 대표적인 관광지 가운데 한 곳이다. 역시나 노래패들의 라이브가 펼쳐지고 있었다. 재작년 여름, 전라도 먼 바다에서 처음 들었던 '안동역에서'가 귀에 익다. 차 안에 앉은 채로 그 한 곡을 다 듣고 다시 길 위로 나선다.


 월천리를 지나는 길 위에서 화려하고도 웅장한 LNG공장 더미를 만났다. 그 불빛에 맘을 빼앗겨 속도를 늦추고 셔터를 눌렀다. 그랬는데... 그게 월천리 솔섬의 망가진 풍경일 줄이야. 

 대한항공이 공모한 풍경 사진전에서 대상을 받은 마이클 케니의 솔섬 풍경이다. 저 흉물스런 공장 더미가 들어서기 전을 보라. 우리 땅, 우리 물빛이 지닌 매력이 이러할진대 언제나 천박한 자본이 덕지덕지 그 정겨운 민낯을 망친다.

 <공장이 들어선 후의 솔섬 풍경>

 



 

  삼척에서, 동해에서, 방을 구하지 못해 묵호까지 왔다. 눈으로 놓치고 지나는 바다 풍경이 아쉬워 삼척쯤에서 밤을 견디려 했는데, 지금 동해는 관광객들로 어디든 북적대는 느낌. 몇 곳의 숙소를 놓치고 묵호까지 왔다.

  발 아래 파도소리가 방충망을 흔들고, 간간이 지나는 동해선 열차가 창문을 흔들어대는 곳이다.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풍뎅이와 날파리들이 부르릉~ 튀어 올라 깜짝깜짝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방이다. 거기다 커텐과 이불, 심지어 욕실 슬리퍼까지 온통 핑크핑크다.

  그러고보면 그 동안의 여행이 참 호화로웠던가보다...이만한 것들에 맘이 쓰이는 걸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