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사(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 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 영조의 출생 설화
804년(애장왕 5) 심지(心地)가 창건하고, 1605년(선조 38) 계관(戒寬)이 중창하였으며, 1695년(숙종 21) 현응(玄應)이 삼창하였다. 이 절에는 영조(英祖)의 출생과 관계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숙종의 부탁을 받은 현응은 농산(聾山)과 함께 백일기도를 하였고, 기도가 끝나는 날 농산이 숙빈(淑嬪) 최씨에게 현몽하였으며, 이렇게 태어난 아들이 후일의 영조였다는 것이다. 숙종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파계사 주변 40리 이내의 조세(租稅)를 받아 쓰라고 하였으나 현응은 이를 거절하고 선대의 위패를 모시기를 청하였다. 이는 지방 유림(儒林)의 행패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1979년 관음보살상을 개금할 때 불상에서 나온 영조의 어의(御衣)는 이 설화의 신빙성을 해준다.
처마에 매달린 풍경에선 언제나 절로 소리가 날 것만 같다.
바람이 지나지 않아도, 지나는 새의 날개짓이 아니어도,
그저 그렇게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에 절렁절렁, 그렇게 한없이 흔들렸을 것만 같다.
<범종각>
전체적으로 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범종각만큼은 여느 절집 못지 않게 우람하다. 비탈진 길에서 올려다 보는 범종각의 처마선은 한껏 들어올린 여인네의 치맛자락처럼 은근함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여느 절처럼 '누'라 이름하지 않고 '각'이라 이름 붙인 까닭도 이 처마선이 지닌 날렵함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체로 '누'보다는 '각'의 지붕선이 좀더 날렵한 면이 있다. 다만 범종각 아래를 빈 여백으로 두지 않고, 인공의 유리문을 달아 물품 판매소로 활용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경내 화장실이 공사중이라 임시로 쓰고 있는 요사체 화장실 쪽에서 경내를 바라보면 파계사의 옆모습을 훔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아담한 절집이다. 산비탈 지형이라 터가 넓지 못했던 까닭이리라. 대웅전에선 어느 혼령의 천도제가 이루어지고 있어 발을 들이지 못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공존은 언제나 현재형일 것이다.
원통전 뒤로 돌아가면 산신각이 나온다. 산신각을 떠받친 돌담이다. 자연석을 엇쌓기 방식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불사에 참여했을 민초들의 소박한 바람들이 이 돌담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서로 다른 모양의 크고 작은 돌들이 어찌 저리 제자리에 맞게 들앉아 조화를 이루는지 묘한 느낌을 전해 준다. 사람 사는 일에도 저런 조화로움이 필요할 터인데, 자꾸 내 안의 모난 것들을 감추지 못해 저 막돌이 지어내는 아름다움을 배우지 못한다.
<기영각> 영조대왕을 기리는 사당이다. 영조대왕의 설화와 연관된 곳임을 분명히 드러내 보이기 위함일 것이다. 아담한 규모지만 그에 걸맞지 않은 팔작지붕의 수려함이 눈길을 끄는 곳이다.
<적묵당>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다는 불교의 몸가짐을 현액으로 내걸었다. 소박한 듯 힘 있는 서체가 눈길을 끈다. 누구의 글씨인지 알 수 없지만, 저 서체를 본받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보았다.
햇살이 절 마당에 쏟아지던 5월 어느 날, 나는 저 적묵당의 처마 아래 앉아 원통전에서 치러지는 한 영혼의 천도제를 들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를 스님의 염불소리가 열린 문틈으로 울렁울렁 넘어올 때마다, 마당의 환한 햇살이 한줌씩 무뎌져 갔다. 그렇게 한 목숨이 또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날이었다.
<설선당> 원통전 앞뜰에 적묵당과 마주한 건물이다. 적묵당은 처마 단청과 기둥, 본체 등이 전혀 채색이 없는 것과 달리 설선당의 채색은 짙다. 주로 강습과 식당으로 이용되는 까닭에 그다지 운치를 둘 만한 건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설선당 마루끝에 앉아 맞은편 적묵당을 바라보는 시간은 꽤 매력적이다. 절마당의 햇살이 눈부실 정도로 그득한 날이면 한 세상에서 또 다른 한 세상으로 건너가는 것만큼이나 아득함을 느낄 수 있다.
요사체에 딸린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앞서 가는 스님 한 분의 뒷모습을 뵈었다. 문득, 저 스님의 뒤를 묵묵히 따르면 이 번민의 날들을 떨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 지나고나면 저리 허적일 것을...
저 길 위에서 나는 또 하나의 뒷모습을 놓쳤다.
저 길이 이끄는 곳이 어디를 향하는지 번연히 알면서도 자꾸만 저 댓돌 위에 발을 놓기가 꺼려졌다.
절집 마당 한 켠에서부터 나무 그림자가 키를 늘이기 시작하는 동안에도 저 길 끝 너머에서 스님의 천도 소리가 가물가물거리고 있었다.
요사체에서 원통전 앞마당으로 넘어오는 길은 아득하기만 했다. 열 서너 개의 돌무더기를 짚으면 될 일이었는데, 그 돌무더기 앞에 마음을 옮기지 못하고 멍하니 건넛산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덤불처럼 함부로 자란 나뭇가지들이 하늘 귀퉁이를 한잎 베어물고 있었다. 그렇게 하늘 한 귀퉁이를 내준 태양이 하늘의 한가운데서 조금씩 조금씩 비켜나 반대편으로 몸을 옮기고 있었다.
아직 스님의 천도가 끝나기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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