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 떠돌기...

무척산 <모은암>...비탈을 오르다...

naru4u 2017. 6. 23. 17:00


# 무척산 '모은암'에 오르다.

무척산은 김해 생림에 있는 약 700M의 야트막한 산이다. 이 얕은 산자락 어느 비탈쯤에 천 년의 비구름을 견뎌 온 작은 암자 '모은암'이 있다.

김수로와 허황후 사이에 난 열 명의 아들 가운데 일곱이 지리산 칠불사에서 불가의 깨달음을 받들었다. 이 모은암은 인도를 떠나 온 허황후와, 그 허황후를 두고 온 일곱 아들들이 제 어미에 대한 그리움을 켜켜이 지어 올린 절집이다.


차가 더 오르지 못할 길 끝에 자그마한 주차장이 터를 잡고 있다. 차에서 내리면 눈앞에 이 가파른 언덕이 나타난다. 단아한 팻말이 가리키는 대로 휘고 구부러진 돌계단을 걸어 오르다 보면,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들려오는 목탁음 소리가 돌계단 하나 하나를 걸어 내려 낯선 객의 걸음을 이끈다.

모은암은 가파른 벼랑에 위태롭게 지어 올린 암자이다. 그런 까닭에 목탁 소리에 이끌려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요사체의 지붕 한 끝이 허공 한 자락을 길게 베어 물고 있다.


좁은 마당에서 한곁으로 비껴 선 곳에 범종을 매달아 올린 '모음각'이 있다. 대개의 절집에선 범종루라 부르는 곳을 이곳에선 모음각이라고 현판을 내걸었다. 부처의 말씀보다 어미의 음성을 더 크게 여긴 까닭일까...

대개 '누'보다는 '각'이라 이름 붙인 처마선이 좀더 날렵하다. 그러고보면, 좁은 터에 처마를 저리 활짝 펼친 것은 좁은 터 위에 자칫 옹졸해 보일 수 있는 절집의 규모를 극복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전각의 터를 넓게 잡을 수 없는 터라, 범종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가의 사물들(북, 목어, 운판, 범종) 가운데 범종만 뎅그러니 매달렸다.


'모음각'이라는 현판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개조심'이라 써 붙인 팻말이다. 강렬한 붉은 색감이 단번에 눈길을 끈다. 뭔가 싶어 다가가보니 전각 아래 둥그렇게 뭉쳐진 털복숭이 개 한 마리가 눈에 든다. 모가지 한옆으로 '외부인출임금지'라 쓴 팻말을 덧붙인 장면에선 절로 웃음이 배시시 번진다.


전체적으로 모은암은 무질서한 느낌이다. 관광지나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등산로 자락에 터 잡은 여느 절집들처럼 단정하게 손질되지도 않았고, 볼거리들을 진열하 듯 늘어놓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 무질서한 풍경이 싫지 않다. 이 절집에선 어쩌면 그런 무질서함들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터는 좁고 비탈이 심한 곳에선 물건들이 놓일 만한 자리가 넉넉하진 않았을 터이다. 그저 놓일 만한 곳이면 어디든 그곳이 제자리가 되는 것일게다.


<대웅전 탱화>

모은암의 대웅전 탱화는 여느 절집에선 여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대개는 초록과 붉은 색감이 주를 이루는데 여기 탱화는 검게 채색된 먹빛이다. 법당에 발을 들여 그 면면을 세세히 살펴보고 싶었는데, 그때껏 낭랑하니 이어지던 스님의 불경을 흐트러뜨릴까 보아 감히 발을 들이지 못 했다. 다시 모은암에 올라야 할 이유 하나를 그리 남겨 두었다.

대웅전을 오른쪽으로 돌아들면 뜻하지 않은 풍경과 만난다. 바위 틈 사이를 벌려 그 안에 전각을 꾸민 '관음전'이다. 가운데 석가모니를 앉히고 그 좌우에 협시불을, 그리고 그 아래 단을 여럿 나누어 석가모니의 제자들을 오그종종 앉혔다. 아난존자를 비롯한 석가의 제자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더러는 앉고 더러는 서서, 뜻밖의 풍경을 신기해 하는 관람객의 눈길에 화답한다.

석상의 됨됨이는 하나같이 섬세하지 못하다. 얼핏 보아 솜씨 좋은 석공의 손놀림은 아닌 듯싶다. 그럼에도 표정이나 낯빛이 선연히 구분된다. 그런 까닭에 그만하면 됐다 싶다. 오히려 저 서툴러 보이는 됨됨이들이 바위를 처마로 얹은 관음전에선 더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모은암'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그 은혜에 대한 마음으로 지어 올린 절집이다. 규모가 크지 않고, 앉은 터 또한 넓지 않다. 그러나 그 작고 좁은 터가 아우른 분위기는 정겹고 평온하다. 일상을 잊고 대웅전 한끝에 앉아 절렁절렁, 스님의 불경 소리에 마음 한끝을 묶어 두고 싶은 절이다. 그리하여 한 나절, 혹은 꼬박 하루를 돌계단 밟고 오르내리는 바람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고, 처마 위로 건들대는 초록 그늘에 때묻은 몸을 함뿍 적셔 보고도 싶은...


똑같은 일상을 반복해 가는 요 몇 년의 시간들 속에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많다...그럼에도 너무 무겁다...

얼마를 더 버려야 할 지...그렇게 버리고 잃고 나면 가벼워지긴 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