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뜬금없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눈이 내렸다. 그것도 거푸 이틀씩...
동네 아이들을 죄 불러모아 아파트 주차장 한 켠에 눈사람을 만들어 세웠다.
그러나 그 눈사람은 반나절 만에 처참하게 두 동강이 나버렸다. 어느 몹쓸 인심이 그러한지, 몸체 동강 난 자리에 보도블럭 하나 휑, 했다. 우쒸~ 대체 언넘이지?
3월...
이번엔 비가 뿌린다. 드센 바람이 제법 실한 빗줄기를 사선으로 흘려 놓는다. 이런 날엔 우산 받치기가 여간 아니다. 결국, 아랫도리 적시는 건 포기하고 머리칼만 겨우 가리기 위해 바람쪽으로 우산을 돌린다. 팽팽히 밀어오는 바람의 두께를 온몸으로 맞서보는 일은 짜릿하다.
봄...아직은 시샘...
비가 그칠 무렵부터 기온이 다시 내려간다는 소식.
남녘 어느 귀퉁이에 꽃망울이 번진다는 소식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올해도 그 시샘하는 마음이 삭지 못하고 꽃을 향해 덤비나보다.
어둑한 빛과 향...
구름이 두터운 하늘 아래, 커텐을 활짝 열어젖혀도 거실이 어둑하다. 거실보다 더 어둑한 주방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여러 해 손 대지 않은 커피메이커를 찾아 꺼낸다. 수북한 먼지들...게으름이 켜켜이 않은 흔적.
그럼에도 커피메이커는 순식간에 쉭-, 쉭-, 몸 달은 소리를 낸다. 어둑한 주방에서 어둠을 닮은 커피향이 낮게 번진다. 거실로, 책방으로, 안방으로...순식간에 이 어둑한 공간이 커피의 향과 빛에 점령당한다. 난 이 사치스러울지도 모르는 시간을 오늘만큼은 즐겨보기로 했다. 온 방의 문들을 다 열어젖혀 어둑한 커피향이 맘대로 이 점령지를 유린하도록 내버려 둔 채, 노트북을 켜 든다. 마주한 창 밖, 솔숲은 비에 젖어 어둑하고, 등 뒤로는 커피향이 스멀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어둑함...어둑한 것도 때론 '낭만'이 되고, '사치'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비 내리는 봄날 오전을 치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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