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읽기...

불안의 날들이 이어지다...<재와 빨강>(편혜영)

naru4u 2019. 3. 27. 18:48







<재와 빨강>(편혜영 / 창비)

사내들이 군대에서 배우는 조직의 생리가운데 하나는 '튀지 마라'는 것이다. 요즘같이 개성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그저 남들만큼만' 하며 살아야 한다는 삶의 진리는 참 아이러니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그'도 그날 '튀지만 않았다면...', C국의 그 매캐한 소독약과 잿더미 속에서 처참하게 살아가진 않았을 것이다. 우연한 사고처럼 발휘된 '쥐잡기 능력'. 조직은 그런 뛰어난 능력(?)의 경쟁자를 그냥 두지 않는다.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C국으로의 전출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아내는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사람과 재혼을 하고, 회사 내에선 온통 시샘과 경쟁의 구도 속에서 철저히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그. C국으로서의 전출은 그렇게 강요된 선택이었다.

그가 C국 지사의 인사 담당이었던 '몰'에게서 친근감을 느끼는 것도 전화상으로나마 그가 받은 유일한 친절이자 배려였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편한 표정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같다. 매캐한 소독약 냄새에 한동안 중독된 듯도 싶었다. 내가 거처하는 곳곳에서도 갑자기 쥐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불안감이 며칠 동안 이어지기도 했다.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었고, 악몽을 꾸는 날들이 이어졌다.

여태껏 내가 좋아했던 작품 경향과는 완전 다른 편혜영의 소설들이었지만, 난 그의 그 파격적인 발상과 무덤덤한 문장들이 좋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참 힘들었다. 구체적인 상상은 역겨웠고, 무심한 듯 읽어내리기엔 그의 삶이 너무 안쓰러웠다.힘들게 마지막 장에 이르고 나서야 겨우 끝났다,는 안도감이 일었다. 그러나 마지막 장에서 끝난 문장들은 한정된 페이지 안에 다 담아내지 못한 '그'의 끝나지 않는 삶의 시작이었다. 그는 여전히 C국에 있고 여전히 기침중이다.

다소 과장되고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진 도시 풍경은 흑사병이 번진 중세 유럽의 지하소굴을 연상하게까지 한다. 그속에서 누명인지, 혐의인지도 모르는 살인범(이 소설에서 어느 것 하나 선명한 것은 없다)이 되어 생존을 위해선 쫓겨야 하고, 생계를 위해선 쥐를 쫓아야만 하는 이중적 삶을 꾸려가야 하는 인물. 이 과장된 장치들을 걷어내고 나면 그 자리는 오롯이 우리의 현실이 된다. 무엇하나 분명한 것 없는 일상 속에서 파편적 인간 관계로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야만 하는 현실. 생활에 쫓기고, 또 그 생활을 위해 자본을 쉼없이 쫓아야 하는 하루하루의 날들이 행복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니랴.

그러고보면 소설을 읽는 동안,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밤들과 악몽을 꾸어대던 날들은 소설때문이 아니라, 이 파편화되고 불분명한 일상을 살아야만 하는 내 생의 불안감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