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영화관...

<아바타>를 보는 몇 개의 시선...

naru4u 2010. 3. 26. 14:22

 

 

 

  <아바타>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이 잦아든 요즈음에서야 돌아보면, <아바타>는 2009년과 2010년을 잇는 교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연말과 연초, 내내 <아바타>에 대한 이야기들이 세상을 떠다녔다. 심지어 TV 토론 프로인 '100분 토론'에서조차 <아바타>가 불러 일으킨 파장에 대한 격론이 벌어질 정도였다.

 

   상업 영화에 3D 입체 기술이 본격적으로 덧씌워진 <아바타>는 분명 새로운 영상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기에 충분했다.

  또 고등학교 시절, 이 영화의 바탕을 스케치하고, 그 이후로 계속 이 영화에 대한 상상을 놓지 않았다는 감독의 집념. 그리하여 결국, 새로운 영상 기술의 접목으로 현실이 되었다는, 감독의 영화 뒷이야기는 영화의 가치를 덧씌우는 배경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였다.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내게도 이 영화는 놀라움의 결정체였다. 감독이 제작 과정에서 세세히 신경 쓴 장면 하나하나를 오롯이 살려보기엔 시설이나, 관람 소품(입체안경) 들이 뒷받침을 해주진 못했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영화는 충격적이었고, 많은 생각거리를 내게 던져 주었다. 그 첫번째는 영상에 비해 '스토리'에 대한 사람들의 무덤덤한 시선과, 그 시선들을 이해하기 위해 꺼내 든 지난 영화 몇 편에 대한 생각. 

 

#-1. <매트릭스>, <트루먼 쇼>, 그리고 <아바타>...

일부 사람들은 "너무 뻔~한 스토리였다"라고 실망스런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뻔한 스토리를 가지고 전 세계를 열광시킨 것이라면 그 또한 대단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컴퓨터 속의 '아바타'와 실제 세계의 인간이 서로 영역을 넘나들며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간다는 것......이런 발상이 있었던가. 어떤 이들은 가상과 실재의 영역 넘나듦은 이미 <매트릭스>에서 보인 것이라 하지만, <매트릭스>는 실제 세계를 중심에 놓고, 가상을 부정하는 스토리 라인이다. 그래서 그 둘의 세계는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세계다. 그러나 영화 <아바타>는 둘의 세계 모두를 인정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자율의지를 통해 어느 세계가 더 가치 있는 것인가를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선택'을 유도하는 스토리 라인이다. 이런 점에서 <아바타>는 <매트릭스>나 <트루먼 쇼> 들과 같은 가상을 다룬 영화와는 다른 점이 분명하다.

  

 

#-2. 공간베끼기, 혹은 재해석?

  <아바타>에서 주요 배경이 되었던 '천공의 섬' 들 장면이다. 감독은 이 장면을 중국 황성에 위치한 산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지만, 극성스런 네티즌들은 황성이 아니라 후난성에 윛한 장가계 지역의 '남천일주(南天一柱)봉'이라 정정해 알렸다. 중국은 <아바타>의 흥행에 맞춰 아예 이 산 이름을 '아바타 할렐루야 산'으로 바꾸고, 적극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의 실용정신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어쨌거나......

  이 장면은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다. 이 장면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 <천공의 섬 라퓨타>를 떠올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실제로 이 장면 때문에 <아바타>가 <천공의 섬 라퓨타>를 베낀 '아류작'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니까.

 

 

<아바타>

 

<천공의 섬 라퓨타>(미야자키 하야오, 2004)

 

 이렇게 나란히 놓고 보니, 완전 다른 장면이라 선뜻 부인하긴 어려울 듯도 싶다. 그런데 정작 이들 장면의 원조는 더 거슬러 올라,  현대 추상 미술의 대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피레네의 성>에서 찾을 수 있다. 딱히 규정할 수 없는 현대 문명, 혹은 현대인에 대한 비틀기를 그림의 기본 축으로 하는 마그리트의 그림들은 극히 사실적인 듯하면서도, 몽환적인 면을 함께 아우르고 있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이조차 마그리트의 팬을 자처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유자재로 해석될 수 있는 그 자유분방함에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마그리트의 그림들은 여러 영화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하는데, 그의 1953년작인 <Golconde>가 그 대표적인 사례로서,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 들의 하강 장면에 차용된 바 있다. 이런 전례를 보더라도 영화 <아바타>의 장면이나, <천공의 섬 라퓨타>의 장면 들은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3. '理'의 시대를 깨운 '靈'의 힘!

 

  인간은 근대 산업혁명 이후,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고, 분명하게 인과가 존재하는 것들만 말하려 하는 못된 습성'을 지니게 되었다. 과학의 힘을 바탕으로 가능해진 인간 능력의 무한 확장이 불러온 만용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논리'를 앞세우고, '실증'을 내세운다. '증명', '증거', '논증' 들과 같은 단어들에는 어느 순간부터 '권위'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이런 시대에 '靈'은 미신이거나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 <아바타>는 이러한 시대에 대한 전복적 사고를 바탕에 깔고 있다. 영화에서 '자원채굴'을 위한 '개발'은 논리적 사고로 진행되는 현대 문명의 폭력이었다. 이로 인해 상처 받은 나비족들은 '영'의 숲에서 위로받고, 또 그 안에서 힘을 얻는다. 그리하여 '情靈의 숲'은 가장 원시적인 모습으로 현대문명에 맞서는 거대한 힘으로 설정되어 있다.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근대 이전, 인류의 보편적 믿음은 <아바타>의 결말을 위해 차용된 원시 신앙이다. 최첨단의 기술을 이용해 가장 원시적인 인류의 생체험을 그려냈다는 점 또한, 영화 <아바타>를 보는 하나의 시각이 될 것이다.

 

#-4. '분리'를 통한 '완전한 자유'의 획득-'에리히 프롬'처럼 생각하기!

 

에리히 프롬은 인류의 근원적 고독을 '고독'으로 읽어낸다. 아담과 이브 시절, 태초부터 한 몸이었던 개체가 '분리'를 통해 상실감을 겪게 되고, 그로부터 인간의 '원죄'가 시작되었다는 프롬의 견해에 나는 절대적으로 동조하는 입장이다. 프롬은 이 근원적 고독, 즉 인간이 태초에 겪은 이 분리감이 불안을 낳게 되고, 인간은 그 불안을 견디기 위해, 종교를 만들고, 예술 행위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영적 체험이나 예술은 모두 분리감의 극복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아바타>에서의 '정령의 숲'은 그런 분리된 개체의 합일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아바타와 현실계의 인물로 분리되어 살던 인간이 주체적 의지로 그 분리감을 극복하는 것. 즉 주인공이 현실계의 인물을 포기하고 아바타의 세계로 소속되는 것은 자신의 반쪽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을 때, 분리되었음을 느끼는 것이지 포기하는 순간, 이미 그 반쪽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포기를 이룬 개체는 그대로 하나의 완전한 개체로 거듭날 수 있다. 내게 있어 '에리히 프롬'은, <아바타>를 좀더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한 또 하나의 돋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