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밤이 자욱하다>
*장석주
고양이가 작은 새 한 마리를 낚아챈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그렇게 새장 속의 카나리아 한 놈이 고양이에게 희생되었을 뿐이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희생이 있었던 저녁녘이다 허나 평발로 다가오는 저수지 일대 저녁은 절대로 안전하다 붉은 달이 불끈 떠올랐다 높은 밤나무 가지 끝에 까치 몇 마리 앉아 있다 바람이 좋아 아침녘에 널은 빨래는 잘 말랐다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물가를 딛고 서 있으면서도 머리가 자꾸 서울 쪽으로 기운다 내가 향일성 식물이 못되기 때문일 것이다 물가의 나날들이 하염없다고 느끼면 하염없는 것이겠지 내 마음의 방전(放電)이야 내가 야무지지 못한 탓이다 인사동 어느 골목에선가 누군가 어둠 속에 허리를 꺾고 방금 마신 술과 눈물과 눌린 오징어처럼 납작해진 기억을 함께 토하고 있다 어느덧 내 몸에 인박힌 서울의 소문과 치정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흘러가버린 몇 번의 사랑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나 보다 이미 밤이 저렇게 자욱하다
===============================================장석주, [물은 천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들녘, 2002)
그는 서울을 버리고 안성 어느 물가로 내려 앉았다. 분명 서울이 그를 버린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서울을 버렸다고 말한다. 거대도시를 버리는 일...시인 이문재는 장석주의 삶의 뒤편에 다음과 같은 해설을 붙여 놓았다.
'귀농은 낙향이 아니다. 귀농은, 실패한 삶이 명함을 버리고, 온라인 통장을 해지하고 빈집을 얻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자발적 망명이라고 말해놓았거니와, 귀농은 적극적인 선택이고 의지다. 귀농은 옛날로 돌아가는 낙후가 아니다. 귀농은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성큼, 나아가는 것이다.'
큰 깨달음이다. 그러나 이런 큰 깨달음에 몸 하나를 의지하기엔 아직 내 안은 너무 비좁다. 그래서 자주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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