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봄꽃들이 지천인 계절이다.
성질 급한 몇 놈들은 날 선 바람에 벌써 톡, 톡, 모가지를 꺾고 화단 모퉁이에서 장렬하게 시들기도 하는 봄...
그러나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들이 더 많은 까닭에, 여전히 맘 속엔 기다림이 진하다...
요 몇 주, 스스로 반성이 많은 시간들...
몸도 맘도 떨어지는 꽃을 따라 가라앉기만 하여,
답답한 마음에 행여, 머리라도 들까해서 나서 본 바닷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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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해 안골포를 떠나 거제로 가는 뱃길...멀리 보이는 건 '부산 신항'(크레인)
아스팔트에 길 들여진 눈으로는 바닷길을 볼 수 없다...하늘도 바다도 푸르게 한 빛이지만,
배는 배대로, 갈매기는 갈매기대로, 저들마다의 정해진 길들을 간다...
이 무딘 눈으로, 수십 년 걸어온 길도 제대로 보질 못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2. <거제-부산> 간을 잇게 될 '거가대교'의 골격이다. 바다 위에 저런 육중한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길을 내는
이 인공의 힘들에 간혹 놀란다. 그러나 그 인공의 힘들이 하나하나 지워가는 자연의 본모습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여기고, 빨리 잊는다. 이제 곧, 내가 가는 이 뱃길도 저 다리 아래로 지워지리라...
#-3. 사람이 소멸시키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자연생명의 본성이다. 이 갈매기들은 진해에서부터 배를 따라 바다 한가운데까지
날아왔다. 갑판 위에서 사람들이 던져주는 한낱 '새우깡'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바다를 건너는 50여분 동안, 사람들은
바다가 두른 풍경을 생각지 못한 채, 새우깡을 공중에서 받아먹는 이 갈매기들에게 눈과 맘을 빼앗긴다.
어린 날에 읽었던 <갈매기의 꿈>은 한동안 내 꿈이기도 했는데...저 갈매기들이 그 '조나단'이 아니기를...
#-4. 청마 유치환은 음악가 윤이상과 함께 통영을 대표하는 예술가이다. 그런데도 그의 생가와 기념관이 버젓이 거제 둔덕에 마련돼 있다. 왜일까? 거제와 통영 간의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가 그를 이렇게 양갈래로 갈라 놓았다. 돈벌이를 위해 예술가의 예술혼쯤은 갈래갈래 찢어놓는...이것이 천박한 자본주의의 논리고, 무지한 관의 행정 뽄새다.
#-5. 청마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거제 둔덕골이다. 그러나 정작 이곳엔 어설프게 지어놓은 생가와 몇 가지 기념품만
전시해 놓은 기념관이 고작이다. 특별한 문학기획이 보이지 않는다. 그만한 머리가 없는 까닭이다.
수십 년, 청마에 등 돌리고 앉았다가 '문화관광'이 돈 되는 것임을 뒤늦게 알고서야 서두른 결과가 이 모양이다.
통영에 있는 <청마문학관>과 견주어 볼 만한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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