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남산에 올랐던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새벽 첫차로 도착한 서울역에서 무작정 남산쪽으로 방향을 잡아 걸어올랐다.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또 무엇을 보자고 오른 것도 아니었다. 오르는 길에 목격한 것은 서울 시민들의 아침이었다. 희뿌윰한 새벽빛을 등지고 배드민턴을 치는 노년의 사람들...약수통을 들고 오르내리는 중년의 사람들...
그 시간, 고향 벌밭에선 아버지 소를 몰고, 어머니는 김을 매느라 비지땀을 흘리던 시간이었다......
그때, 신라호텔 숲그늘을 디디고 내리면서 처음 '서울'에 대해 생각했다. 난 이방인이었고, 서러웠다. 그렇게 서울은 내게 불평등을 제일 먼저 가르친 도시였다.
이십 여년이 지나, 이제 다시 그 남산을 올랐다. 그 사이 나는 도시인이 되었고, 먹고 살 만한 중년이 되었다. 한가롭고 낭만적으로만 보이는 서울시민들 틈에 끼여 나는 내 아내와 내 아이들에게 '서울'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 속의 서울은 온통 역사와 문화가 화려한 도시였다. 이야기 그 어느 자락에도 지난 날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평등해 보이던 삶에 대한 우울은 섞여들지 않았다.
.......
이제 나도 '기성인'이 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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