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남사>(石南寺)
'석남사'가 자리잡은 가지산은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영남의 아홉 개 봉우리 가운데서도 그 높이가 가장 으뜸이다. 그 높이뿐 아니라 아홉 개의 봉우리들 가운데 가장 가운데 있어서 여러모로 영남 알프스의 중심으로 꼽히는 산이다. 가지산이 거느린 세 개의 골짜기 가운데 동쪽 골짜기에 자리잡은 절집이 석남사이다.
많은 사람들이 석남사에 매료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길때문이다. 석남사 일주문에서 경내까지 오르게 되는 이 길에는 소나무, 서어나무, 굴참나무(도토리나무)...들이 빼곡하다. 길을 오르다보면 여기저기서 투닥툭툭,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맞춰 여기저기 도토리들이 흩어진다. 이 단단한 껍질을 다람쥐들은 대체 어떻게 깨뜨리는 것인지... 이 흩어진 도토리들을 주워 모으느라 이 가을 다람쥐들의 일상이 바쁘겠다.
절집의 처마선은 언제봐도 평온함을 준다. 화려한 단청빛이 유난스럽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암회색의 짙은 기와 지붕이 꾸욱~ 누르고 있는 까닭이지 싶다. 일정한 간격과 일정한 문양으로 질서를 만드는 저 문살들의 가지런함도 그런 평온함을 지어내는 이유일 것이다. 한참을 저런 마루끝에 앉아서, 대웅전에서 마당으로 내려서는 스님의 불공소리를 듣는 일이 참 호사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일상을 조금만 벗어나면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데 자꾸 붙들어 매는 일상들이 늘어난다.
그리 오래되진 않았을 난간에 세월의 묵은때가 앉고 있다. 침계루 앞에 놓인 돌난간...
조사전 뒤의 대숲이 울울창창하다. 나무들을 헤집고 들면 묵은 전설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잔바람에도 쏴~ 하니, 대숲이 출렁댄다. 바람이 불 때면 비틀리지 않으려고 발끝에 힘을 주고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을 저 대숲 앞에서야 깨달았다. 그랬다...그러고 있었다...
500년 전 간월사에서 옮겨 온 엄나무 구유이다. 사찰 행사 때 스님들의 밥을 담아 내던 밥그릇이다. 대개 절집의 규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부도탑. 1962년에 보수를 위해 해체했을 때 이미 사리들은 사라진 뒤였다. 그 뼛조각들을 훔쳐 간 이들은 어떤 이유였을지.
탑신의 사면에 사자상이 새겨져 있는데 그 자세가 모두 다르다. 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통일 신라 말기의 작품답게 탑신에 새긴 조각들이 정교하다.
석남사엘 가본 게 벌써 십여 년이나 된 듯하다. 그 세월 동안 가는 길들도 많이 변했지만 가장 변한 건 이 주차장 풍경이다 싶다. 예전엔 흙바닥에 먼지 풀풀 날리는 빨간 버스들이 띄엄띄엄 섰다 가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이런 풍경으로 변했다. 저들에겐 생계의 문제겠지만, 그저 지나는 이에겐 옛풍경이 그립다.
-2017. 9. 초입의 어느 날...
한때 멀고 가까운 절집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모을 때 주변 사람들은 내가 종교에 심취한 줄 알았었다. 내게 종교는 그냥 문화이다. 여러 시대, 여러 사람들의 나날살이가 뒤섞인 문화체...내가 절집을 찾는 이유이다. 절집을 찾아가는 길에선 많은 것을 볼 수 있어 좋다. 길 풍경, 사람 풍경, 나무들, 꽃들, 그리고 하늘과 산...어느 절집에 다다르기까지 만나는 모든 것들이 그 절집을 찾게 하는 이유이다. 여행이란 그런 것일게다. 그리 장황하지 않게, 그리 거창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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