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 떠돌기...

7번 국도(4)...<논골담길>

naru4u 2017. 8. 17. 20:12


<묵호수변공원> 쪽에서 올라가는 골목 초입...'동 트는 동해'...이 지역의 슬로건같은 건가보다. 문법적으로 틀렸지만 동해의 이미지를 잘 살려낸 이미지 문구라는 생각.


<만복상회>...'만복'이라는 이름은 조선 전기 소설에서도 찾아지는 이름이다. 복을 많

        이 받길 바라는 우리 민중들의 바람이 고스란히 밴 이름이다. 요즘 젊은이들에

        겐 조금 촌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르나, 예나 지금이나 복을 바라는 민중의 염원

        은 간절하다.


술을 드시지 못했던 아버지 덕택에 난 어린 시절, 저런 주막집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 옛날, 내가 살던 그 항구 도시의 비탈진 좁은 골목 안에도 분명 저런 나직하고 따뜻한 주막이 한둘 쯤을 들었을게다. 아파트가 생기면서부터 잃어버린 골목의 서정이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나도 이제 늙나보다...


어릴 땐, 머리 깎으러 가는 일이 죽으리만치 싫었다. 늘 빽빽, 울다가 아버지께 머리를 한 대 쥐어박히고서야 끌려가 듯 따라 갔었다. 어린이용 의자가 따로 없던 터라, 팔걸이에 널판지를 가로놓아 그 위에 달랑 엉덩이를 앉히면, 아직 덜 자란 두 다리가 허공에서 대롱거렸다.

옆자리 아저씨의 턱선에 뭉게구름같은 비누 거품이 그득 피어 오르면, 그 앞에서 마치 퍼포먼스라도 하듯 이발사 아저씨는 길다란 면도칼을 가죽띠에 대고 쓱쓱, 날을 갈았다. 그리고 그날이 그 뭉게구름 속을 헤집는 동안, 이발소 안엔 적막이 가득해지곤 했다. 그 적막도 이젠 그리움으로 남았다.

그땐 맞춤양복점이 보편적이었다. 어느 가게거나 진열장 안엔 '알랭드롱'이 푸르스름한 하늘을 배경으로 맵시있는 양복 차림으로 들앉아 있었다. 그렇게 그 이름은 내가 처음 알았던 외국 배우 이름이었다.

겨울이면 비탈진 골목길에 연탄가루가 풀풀, 날렸다. 리어카를 끌고 밀고 올라가는 이웃집 연탄가게 내외의 모습은 어린 내 눈에도 고달파 보였다. 그러나, 그런 연탄을 창고에 몇백 장씩 한번에 쟁여 놓는 일이 쉽지 않았던 우리집 살림이 그분들의 눈에 더 고달파 보였을지 모른다.


생각없이 지나다 불쑥 얘를 만나곤 깜짝, 놀랐다. 똥누는 배경 치곤 동상의 때깔이 휘황찬란했다. 옛날 이 골목길 어딘가에는 저런 공중화장실이 있었던가 보다. 아침마다 공중화장실 앞에서 전쟁을 치러야 했을 그때의 나날살이는 생각만으로도 짠하다.

이 여주인공은 대체 누군지...원더우먼...아니, 원더할매? 절로 픽, 웃고 말았다.


하루 종일 이러고 앉았을 이넘...안쓰럽다..


이 드라마를 보진 못 했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한 출렁다리는 분명 운치 있었다.


드라마 <상속자들>

이 드라마는 짬짬이 본 것 같다. 여주인공이었던 은상이(박신애)의 고향집으로 나왔던 곳. 그때 집앞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며 동해 어디쯤일거라 생각은 했었는데, 여기일 줄이야. 여기 와서야 알았다.

우리 땅 어딜 가나, 바람만 좀 있다 싶으면 어김없이 들어서 있는 풍차와 바람개비.

똑같은 풍차와 바람개비인데도 배경이 바다니까 또 색다른 느낌이다.




이곳을 지나는데 마침 논골댁 내외분이 나들이 가시는지 골목으로 난 쪽문을 걸어 잠그고 계셨다. 허리쯤으로 내려 서 있는 담장이라 지나는 사람들 눈에 안마당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나무로 만들어진 쪽문은 전혀 방범의 기능을 갖지 못했음에도 내외가 문을 잠그는 손길이 꼼꼼했다.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오르내리다 보면 담벼락 여기저기에 저런 작품들이 예쁘게 새겨져 있다. 그리 이름이 높지 않은 시인임에도 이 골목 사람들의 나날살이를 결 고르게 잘 녹여 냈다 싶다. 어디를 다니며 이렇게 벽에 남겨진 시들을 꼼꼼하게 읽거나 사진으로 옮기진 않는데, 여기 작품들은 죄 읽고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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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이 전국적인 입소문이 나면서 이 땅 여기저기의 비탈진 골목길에 벽화마을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여러 곳을 가보진 않았지만 동피랑과 비교해 보면 난 여기가 훨씬 정겹다. 이국적으로 예쁘게만 꾸려놓은 동피랑과는 달리, 여기는 오래도록 이곳을 살아 온 사람들의 서사가 글과 그림으로 그대로 녹아있다. 그 서사들을 따라 걷는 길이 이 논골담길을 걷는 매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