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 떠돌기...

7번 국도(5)...헌화로(금진~심곡항)

naru4u 2017. 8. 23. 23:53


 '헌화로'는 금진에서 심곡항에 이르기까지의 바닷길이다. 일찍이 신라시대 순정공의 아내였던 '수로부인'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 오는 곳이다. 용이 납치를 하고, 산비탈길에선 늙은이가 목숨을 걸고 벼랑을 기어 내려가 꽃을 꺾어다 바칠 만큼 아름다웠다는 수로부인. 신계와 인간계의 존재들이 모두 탐할 만큼의 미모를 지녔다는 여인이다. 실제 그 여인이 정말 아름다웠던 것인지, 아니면 산길과 바닷길이 어우러진 이 길에 대한 신라인들의 상상력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예전에 비해 상상도 할 수 없으리만치 정비된 이 길은 여전히 아름답다.

 이 길은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길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 파도가 그리 높지 않음에도 제법 묵직한 물더미가 쉽사리 방파제를 넘어 온다. 섣불리 해안에 내려섰다가는 물을 옴팡 뒤집어 쓰기 일쑤다.





'바다부챗길'...

 심곡에서 해안을 따라 약 2.8km에 이르는 길이다. 예전엔 군사 경계 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된 지역이었다. 지난 6월에 정식 개장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트래킹 코스로 활용하고 있다. 이 지역은 천연기념물 437호로 지정될 만큼 빼어난 해안단구로서, 우리나라 해안단구 중에는 최대 길이라고 한다.


 길을 떠나기 전, 혼자 하는 여행은 '느긋하게 즐기는 것'이라는 조언을 해 준 친구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 길 위에서도 나는 부산스러웠고, 바쁘기만 했다. 십리도 안 되는 이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바쁜 걸음으로 걷고 뛰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여행도 그리 여행다운 여행이 아니었다는 자책이 인다.

 동해, 남해, 서해의 바다는 제각각 다른 느낌으로 와 닿는다. 동해가 웅장하고 남성스럽다면 남해의 바다는 다소곳한 여염집 규수같다. 그에 비해 서해의 바다는 분단장 곱게 한 빼어난 기녀를 닮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서해의 낮밤이 확연히 달라지는 데서 느끼는 감정일 게다.

 그러나 그렇게 천양지차의 바다들이지만 그 한끝에 오롯이 서 있는 등대만큼은 어디서나 똑같은 느낌이다.

 '외로움', '기다림', '희망', '절망'...그리고 '공포'.

 어릴 때부터 등대를 보며 모아진 단어들이다.

 어린 시절, 부산의 밤바다 끝에서 도심을 훑고 지나던 그 불빛에 대해 기억해 본다. 일정한 시차를 두고 창문을 열고 들어와, 방 안을 순식간에 훑고 지나던 그 차가운 불빛...등대 끝에 '공포'라는 단어가 매달리기도 하는 것은 그때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