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길이 나를 들어 올린다>...손택수

naru4u 2010. 8. 10. 02:01

<길이 나를 들어 올린다>

                                               *손 택 수*

 

구두 뒤축이 들렸다 닳을 대로 닳아서

뒤축과 땅 사이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공간이 생겼다

깨어질 대로 깨어진 구두코를 닦으며

걸어오는 동안, 길이

이 지긋지긋한 길이

나를 들어 올리고 있었나 보다

닳는 만큼, 발등이 부어오르는 만큼 뒤꿈치를 뽈끈

들어 올려주고 있었나 보다

가끔씩 한쪽으로 기우뚱 몸이 기운다는 건

내 뒤축이 허공을 딛고 있다는 얘기

허공을 디디며 걷고 있다는 얘기

이제 내가 딛는 것의 반은 땅이고

반은 허공이다 그 사이에

내 낡은 구두가 있다.

=====================손택수 시집, [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2010)

 

다친 발목이 아직 온전치 못해 한동안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그러다 오늘은 정장에 구두를 신어야만 할 일이 있어 두어 달 만에 구두를 꺼내 놓았다. 구두도 집과 같아서 사람의 때가 묻지 않으면 금세 폭삭폭삭, 주저 앉는 것일까. 여기저기, 예전에 보지 못한 흠들하며, 구두 밑창은 완연히 낡아 보였다. 새로이 구두를 장만해야겠다고 맘을 먹다가,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그러고보면, 낡은 것들에는 서정이 깃드나보다. 흠 나고, 내려앉은 곳마다 세월이 끼어들어 묵은 기억들이 화석처럼 굳어 이런 서정으로 꽃을 피우는가. 사물에 깃든 서정의 꽃씨를 놓치지 않는 시인의 우먹한 눈망울이 부러운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