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4월의 물고기>(권지예)...

naru4u 2010. 7. 6. 23:29

# 비린 바람 한 자락에 맘을 긁히다...

   -권지예 소설, <4월의 물고기>(자음과모음, 2010)를 읽다.

 

 

 

<4월의 물고기>

  (자음과모음, 2010)

 장마철의 비린 바람 한 자락에도

왈칵, 반가움이 이는 여름. 후두둑, 쏟아진 소나기는 밤새 치렁치렁한 안개다발을 골짝 사이에 풀어 놓았다.

새벽녘, 그 습습한 안개에 숨이 막혀 잠을 깬다. 아슴푸레한 날빛 사이로 물비린내가 물컹했다.

  

   아~, 물비린내...문득, 치렁한 안개 사이에 커다란 호수가 들앉아 있는 것 같은 환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물안개가 엎디운 수면 위로 희끄무레한 형상 하나가 둥둥 떠올랐다. 그날은 그대로 모자란 잠을 놓치고 말았다. 그 희끄무레한 형상......

장마가 시작하던 고통스런 여름날의 한 때였다

권지예의 소설, <4월의 물고기>가 가져다 준 후유증이 좀체 가시질 않는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충격적으로 드러나는 인물들의 면면은, 강력계 출입 기자의 취재 수첩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얼핏, 봄자락의 초입에 보았던 작가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중년으로 보이지 않는 그 절대 동안의 맑은 낯빛이 좀체 이 소설의 서사와 연결되지 않는다. 아, 작가란 그런 존재던가. 글 속에 부려진 그 날선 비린내들은 대체 어떤 체험의 오라기들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두운 과거를 다소 폐쇄적이며, 자정(自淨)적인 방법(요가, 글쓰기)으로 다스려 가는 여주인공(서인).

   비극적이며 비밀스런 과거를 다른 인격에 매단 채, 한 몸으로 두 겹의 생을 살아가는 남주인공(선우).

 

   이 둘의 생은 여러 곳, 여러 장면으로 얽혀 그때마다 좀체 풀리지 않는 매듭 하나를 지어놓고 다시 갈라진다. 각자의 생에 매듭지어진 것이 서로에 의한 것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둘은 수십 년을 남남으로 살다 다시 한 번 엉킨다. 그들의 재회에 끼어드는 '날것의 비릿함'.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낚시에 취미가 없는 나로서는 날것이 주는 그 생생한 손맛고, 비릿한 싱그러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내게 그것들은 그저 한결같이 '비린 것'으로만 표현될 뿐이다.

 

   선우와 서인의 나날들엔 그런 비릿함이 치렁한 안개처럼 휘감겨있다. 소설의 전개는 한꺼풀 한꺼풀 그 안개 자락들을 걷어가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희끄무레한 형상들만 겨우 확인될 만한 날빛 속에서 짐짓 섬뜩함이 가늠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한편의 미스테리 잔혹 영화를 본 듯한 기분이다. 이런 류의 영화가 너무 많았던 탓일까? 소설에 묘사된 물안개 속의 장면 하나하나가 선명한 영상으로 환기된다. 그리하여 나는 안개 짙은 그 새벽녘에 그런 환영으로 잠을 설쳤던가보다.

 

   다시 한 번, 작가의 마알갛던 얼굴을 떠올려본다. 여전히 소설의 서사와는 이질적이다. 글에서 환기되는 낯빛이 그 사람의 실제 낯빛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평소의 믿음은 이렇게 또 한 번 어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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