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빗방울에 대하여>...나희덕

naru4u 2010. 4. 26. 22:48

 <빗방울에 대하여>

 

                                              *나희덕*

  

1

빗방울이 구름의 죽음이라는 걸 인디언 마을에 와서 알았다

빗방울이 풀줄기를 타고 땅에 스며들어

죽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2

인디언의 무덤은

동물이나 새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빗방울이 멀리서도 길을 찾아올 수 있도록

 

3

새 형상의 무덤은 흙에서 날고

사슴 형상의 무덤은 아직 풀을 뜯ㄱ 있다

이 비에 풀은 다시 돋아날 것이다

 

4

나무들은 빗방울에게 냄새로 이야기한다

숲은 향기로 소란스럽고

오래된 나무들은 벌써 빗방울의 기억을 털고 있다

 

5

쓰러진 나무는 비로소 쓰러진 나무다

오랜 직립의 삶에서 놓여난

나무의 맨발을 빗방울이 천천히 씻기고 있다

 

6

빗방울은 구름의 기억을 버리고 이 숲에 왔다

그러나 누운 뼈를 적시고

구름과 천둥의 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7

구름이 강물의 죽음이라는 걸 인디언 마을에 와서 알았다

죽은 영혼을 어루만진 강물이

햇빛에 날아오르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나희덕 시집, [야생사과>(창비, 2009) 가운데서.

비가 잦은 봄이다. 봄의 초입에선 바람이 드세었고, 그 바람에 하루하루 자고 난 아침마다 꽃들이 무더기로 져내렸다. 꽃들 져내린 가지 사이로 하늘이 휑- 했고, 빈 가지에 내걸린 둥지들은 바람 앞에 위태로웠다. 바람 앞에 나무들도 어쩌지 못하고 좌우로, 앞뒤로, 몸을 흔들어 바람의 날을 비껴 흘렸다.

이제, 바람이 불어온 하늘 저 어디쯤에서 비가 사선으로 내려치고 있다. 횡으로, 횡으로 불어제낀 바람 앞에 몸을 납작 엎디우고 용케 성한 나날을 견뎠던 풀들이 사선의 빗방울 아래 밑둥을 찔리우고 있다. 날 무딘 빗방울들 내려꽂힌 자리마다 숨벅숨벅, 땅이 패이고 있다. 손톱 끝만큼 패인 그 자국이 잠들고 깨는 여러 날 동안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