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에 대하여>
*나희덕*
1
빗방울이 구름의 죽음이라는 걸 인디언 마을에 와서 알았다
빗방울이 풀줄기를 타고 땅에 스며들어
죽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2
인디언의 무덤은
동물이나 새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빗방울이 멀리서도 길을 찾아올 수 있도록
3
새 형상의 무덤은 흙에서 날고
사슴 형상의 무덤은 아직 풀을 뜯ㄱ 있다
이 비에 풀은 다시 돋아날 것이다
4
나무들은 빗방울에게 냄새로 이야기한다
숲은 향기로 소란스럽고
오래된 나무들은 벌써 빗방울의 기억을 털고 있다
5
쓰러진 나무는 비로소 쓰러진 나무다
오랜 직립의 삶에서 놓여난
나무의 맨발을 빗방울이 천천히 씻기고 있다
6
빗방울은 구름의 기억을 버리고 이 숲에 왔다
그러나 누운 뼈를 적시고
구름과 천둥의 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7
구름이 강물의 죽음이라는 걸 인디언 마을에 와서 알았다
죽은 영혼을 어루만진 강물이
햇빛에 날아오르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나희덕 시집, [야생사과>(창비, 2009) 가운데서.
비가 잦은 봄이다. 봄의 초입에선 바람이 드세었고, 그 바람에 하루하루 자고 난 아침마다 꽃들이 무더기로 져내렸다. 꽃들 져내린 가지 사이로 하늘이 휑- 했고, 빈 가지에 내걸린 둥지들은 바람 앞에 위태로웠다. 바람 앞에 나무들도 어쩌지 못하고 좌우로, 앞뒤로, 몸을 흔들어 바람의 날을 비껴 흘렸다.
이제, 바람이 불어온 하늘 저 어디쯤에서 비가 사선으로 내려치고 있다. 횡으로, 횡으로 불어제낀 바람 앞에 몸을 납작 엎디우고 용케 성한 나날을 견뎠던 풀들이 사선의 빗방울 아래 밑둥을 찔리우고 있다. 날 무딘 빗방울들 내려꽂힌 자리마다 숨벅숨벅, 땅이 패이고 있다. 손톱 끝만큼 패인 그 자국이 잠들고 깨는 여러 날 동안 기억에 남았다.
'시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자리>...나희덕 (0) | 2010.06.23 |
---|---|
<기차>(안도현) (0) | 2010.05.18 |
<백석(白石) 생각>(안도현) (0) | 2010.03.26 |
<공양>(안도현) (0) | 2010.03.15 |
'님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아, 님이여...<공무도하>(김훈) (0) | 2010.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