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님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아, 님이여...<공무도하>(김훈)

naru4u 2010. 3. 15. 11:16

# 님이여, 아~ 님이여, 그 강을...제발...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현의 노래>, <칼의 노래>, <남한산성>...김훈의 소설 제목들을 늘어놓고 보면, 마치 박물관의 관람 화살표시를 따라 걷는 듯한 느낌이다. 고대관에서 중세관으로 옮아가는 동선(動線).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은 각각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글감으로 삼았고, <현의 노래>는 그 이전, 고대가야를 배경으로 아울렀다. <빗살무늬토기>는 비록 현대문명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현대문명 속의 '장님 안마사'를 내세워, 원시문명의 가치를 은근히 드러내보이고자 한 의도가 뚜렷하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소설들을 늘어놓아보면, '원시부족사회-고대국가사회-중세봉건사회'의 역사가 자연스레 눈에 읽힌다. 2009년, '문학동네'에서 펴낸 이 소설 <공무도하>는 역사적으로 '원시부족사회'와 '고대국가사회'의 가운데 자리에 놓아봄직하다. 부족사회에서 국가사회로의 이동. 그 과정에 생겨났을 법한 무수한 혼돈, 그리고 기존 가치들의 파괴. 권위의 상실......등. 고조선의 노래인 '공무도하가'는 지금껏 우리에게 그런 작품으로 읽혀왔다. 그렇다면, 김훈의 <공무도하>는 어떠한가? 그는 왜 현대사회를 글감으로 삼으면서 <공무도하>라는 제목을 내세웠을까? 앞서,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이 비유적 장치로 세워진 제목이었다면, <공무도하> 역시 현대사회에 대한 비유적이거나 혹은 암시적 장치로 읽을 수 있을 터.

 

 

 

-'장마'의 참혹함

-'철거단지'에서의 끔찍한 사고

   (어린 아이가 개에 물려 죽음)

-'폭격기'의 해안지대 폭격 훈련

-'매립지'에서의 비극

   (여중생이 크레인에 깔려 죽음)

-'장기이식'

-'국제결혼'(베트남 여자와의 결혼)

-'매립과 보상'

 

들과 같은 이야기들이 이 소설의 주된 장면을 이룬다. 오늘날, 각종 언론매체에서 심심찮게 목격되는 사건, 사고들이다. 이러한 사건, 사고들을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작가는 주인공으로 신문기자 '문정수'를 내세워 소설의 문체를 지극히 건조하게 전달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의 김훈 소설들이 보여준 문장들과는 분명 다르다. 김훈의 문장들이 보여온 '파닥파닥 살아있음'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전의 소설들에 비해 읽는 속도가 더디고, 손에서 놓는 날이 잦았던 것은 그런 까닭이리라. 작가가 이런 문장들을 고집했다는 건 분명 의도한 내심이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부족사회가 존재하지 않는 문명. '국가'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인간 개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 우리는 그 '강'을 건넌 것이다. '부족사회'와 '국가' 사이를 흐르던 강. 그 강을 건넌 순간, '정서적 공동체'의 구심점은 깨져버렸다. 이 소설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정상적인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못함은 그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정서적 유대감'이 존재하지 않는 문명을 작가는 어떻게 '파닥파닥 살아있게' 쓸 수 있었겠는가. 딱딱하고 무미 건조한 신문 기사 같은 사회. <공무도하>에 부려진 그의 문장들이 이전의 문장들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김훈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이번 소설 <공무도하>를 읽고 실망스러웠으리라. 그러나, 김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무도하>에서 김훈의 속살 한 겹을 새롭게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고르기 전에 '난 어떤 사람이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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