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끝마디 그 까슬함 같은 그리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중년이 되어서도 좀체 온전히 펴지지 않는 단어이다. 혀끝에, 목구멍에, 머금는 자리마다 시큰거리는 이름……. 그런 엄마를 잃어버린 데서 소설은 시작된다.
'엄마'…….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예사롭지 않은 시작이다. 게다가 서사의 대상은 한 사람이 아니라, ‘너’이거나, ‘그’이거나, 혹은 ‘당신’이다. 삼백 여 쪽의 서사 내내 그들의 일상을 따라다니는 서술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창작과비평, 2008)를 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는 이 서술자의 정체를 추적하는 데 있다.
치매가 있는 노모가 서울 사는 아들네 다니러 왔다가 길을 잃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부 간에도 내외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여긴 아버지가, 전철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엄마를 놓친 것이다.
건설회사 간부인 큰오빠, 제법 이름 난 작가인 너, 의류 쇼핑몰을 하는 남동생, 약사인 여동생 들이 부랴부랴 엄마를 찾기 위해 부산스레 떨쳐 일어나 제일 먼저 만든 전단은 다음과 같다.
이름 : 박소녀
생년월일 : 1938년 7월 24일생(만 69세)
용모 : 흰머리가 많이 섞인 짧은 퍼머머리, 광대뼈 튀어나옴. 하늘색 셔츠에 흰 재킷, 베이지색 주름치마를 입었음.
잃어버린 장소 : 지하철 서울역
전단지를 쓰면서 식구들은 엄마의 실제 나이가 1936년생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어려서부터 객지로 뿔뿔이 흩어져 제각각의 생을 살아내기에 바빴을 자녀들에게, 엄마의 생일은 그저 치르고 지나야 할 명절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엄마가 몇 년생이었던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날이 되면 “시간이 없어 선물만 하나 보냈다. 다음엔 꼭 가겠다”라는 식의 상투적 전화 안부이거나, “이제 시골일 그만하시고 서울 와서 저희랑 같이 살아요”라는 식의,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라는 걸 가늠하면서 툭, 던지는 위안조의 안부였으리라. 일흔이 다 되도록 엄마의 변변한 사진 하나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전단지를 통해 엄마를 알아볼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정보는 옷차림이 거의다. 시골 촌부의 옷차림이 명품이거나 브랜드 제품일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시골 장터 어느 천막 아래서 한참 실랑이를 하고서야, 고추나 상추 등속을 내다 판 쌈짓돈으로 모처럼 장만한 차림일 터. 그나마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선 그 장터 옷차림이 변별력을 갖춘 차림이란 게 다행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전단지 말미에 ‘어머니를 찾아주세요’라고 덧붙인 문구에 큰오빠는 작가의 솜씨가 그리 호소력이 없냐며 질타하자, 작은 오빠는 ‘섭섭지 않은 사례’라는 문구가 호소력을 드높일 수 있다며 문구를 보태고, 올케는 ‘분명한 액수’가 훨씬 호소력 있게 작용할 거라며 구체적 액수를 제안하고, 최종적으로 합의된 전단지는 ‘사례금:오백만원’이라는 문구가 조금 더 키워져 최종적으로 인쇄되었다.
사람을 찾는 일, 그것도 ‘엄마’ 혹은 ‘어머니’를 찾는 일에 있어, 구체적 금액의 제시가 이루어져야만 호소력 있는 노력으로 인식되는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서 목격자 제보가 이어지긴 하지만, 그곳을 다녀간 사람이 자신들의 엄마라는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자녀들은 그 족적을 따르다 멈추거나, 혹은 엉뚱한 곳으로 에둘러 갈 뿐이다.
‘엄마의 부재’
참 낭패한 일이긴 하지만, ‘너’와 너의 여동생은 이제야 비로소 엄마의 존재를 생각해 본다. ‘평생 대식구의 밥을 늘 두 개씩 차려야만 했던 엄마’. 하루도 빠짐없이 세 끼니에 도시락까지를 감당해야 했던 엄마. 두 딸들의 기억에 각인된 엄마는 부엌 그 자체였고, 부엌은 또 엄마였다. 그리하여 문득, “엄마가 과연 부엌을 좋아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게 되는 것이다.
여자로서 엄마의 생은 또 어떠했던가! “젊어서도, 결혼해서도, 자식이 생긴 뒤에도 집을 떠날 생각”만 했던 남편. “그럴 때면 말도 없이 집을 나가 팔도를 떠돌아다녔던” 남편을 엄마는 늘 집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어떤 때는 “오토바이에 아내와는 생판 다르게 생긴 여자를 태우고 다시 집을 떠나기도 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때에도 엄마는 아랫목에 밥을 묻으며 지아비를 기다렸다. 그 남편에게 있어 아내는 “베어지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 모르는 나무”였다.
남편은 오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잊고 지낸 아내가 그제서야 생생하게 마음에서 떠올랐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 ‘아내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의 일이었다.
그 아내, 그 엄마는 지금 큰 아들의 삶의 한 때가 부려졌던 서울의 골목들을 찾아 헤매다 발등이 움푹 패인 상처로 파란 슬리퍼를 끌며 고향집으로 돌아와 있다. 덩그러니 안방에 누운 남편을 안쓰러이 건너다보아도 이미 생사의 계(界)를 달리한 까닭에 온기를 잃은 세간들만 안타깝게 그녀를 붙들 뿐이다. 그런 그녀가 이제 마지막 작별을 고한다. 얼어붙은 목소리가 어렵게 어렵게 생사의 경계를 비집어 든다.
“잘 있어요…… 난 이제 이 집에서 나갈라요.”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다.’
‘너’는 지금 이탈리아에 와 있고, 오기 전에 공항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저 편에서 아버지는 “꿈에조차 나타나지 않는” 아내의 야속함으로 흐느껴 울었다. 각자의 일상으로 엄마의 부재를 점점 잊어가는 오빠들에게 ‘너’는 그저 고함만 지를 뿐이었고, 너 또한 한 남자의 아내 역할을 하며 이역만리 타국에 와 있다. 그리고 “창세기 이래 인류의 모든 슬픔을 연약한 두팔로 끌어안고 있는 여인상(성 베드로 성당 안의 피에타상)” 앞에서 “차마 하지 못한 한마디” 입술 사이로 흘렸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불그스레한 책표지를 가만히 손으로 쓸어본다. 음각된 활자의 획들이 손끝에 오돌토돌 걸려왔다. 한 무리의 여자들이 가슴에 손 모으고 고개를 숙인 표지 그림은 좀체 눈에서 비껴나질 않았다.
그래서일까. 간 밤, 엄마를 꿈에서 보았다. 열 예닐곱이 되면서부터 품 밖에 내놓은 자식인지라, 수십 년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 졸이셨다는 엄마. 흐릿한 꿈자락 끝단마다 까슬까슬한 엄마의 손가락 같은 음성이 어슴푸레하다.
오늘은 초저녁부터 잠들고 싶다. 간 밤, 못 다 들은 그 까슬한 잔소리들이 울컥, 그리움으로 번져오길 기다리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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