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자화상1, 아홉살>(오탁번)

naru4u 2007. 8. 23. 15:25
잡지를 뒤적이다가 문득 오래오래 눈길 붙잡는 시 한 편을 만났다.
'아홉 살'...20여년을 훌쩍 넘기고도 몇 해를 더 보태어야 가닿는 기억 저 편의 골짜기.......

<자화상 1, 아홉살>

                                              *오탁번*



소리개 마을 갑분이 누나가
바드름한 송곳니 내보이며 웃을 때마다
나는 솜병아리 마냥 가슴만 팔딱였다
누나네가 읍내로 이사가던 날
바람만 바람만 뒤따라 가다가
누나가 뒤돌아보면
돌멩이 집어서 길섶으로 던졌다

그해 여름 보릿고개를 넘으며
누나의 예쁜 송곳니가
보리밭에서 여무는 쌀보리처럼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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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내게도 저런 한 때가 있었던가보다. 내 나이 아홉? 혹은 그보다 몇 살은 더 얹혔던 것 같은 그해 여름. 우리 동네에도 '갑분이 누나'처럼 '바드름한 송곳니'를 '내보이며 웃'던 누나가 있었다. 도톰한 볼살이 너무도 하얘서 볼 때마다 시큼시큼 눈이 시리던 누나. 또래들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컸던 것도 같던 그 누나는 날 볼 때마다 머리칼을 한 줌 헝클어 주며 내 이름을 장난스레 불러주곤 했었는데......
아버지의 일을 따라 그 도시를 떠나던 날, 설움에 북받쳐 엄마 품에서 엉엉 울어버리고 만 것도 동네 친구들과의 헤어짐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그 도톰한 볼살과 '바드름한 송곳니'의 누나를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아 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들마저도 나의 그 울음 앞에 숙연해져선 쭈삣쭈삣 다가와 날 한 번씩 안아주곤 했지만, 정작 그 골목을 빠져나올 때까지 내가 기다린 것은, 내 머리칼이 기억하는 그 누나의 손금과 장난스레 내 이름을 헝클어뜨리던 누나의 예쁜 입술이었다.

아~, 그 때...내 나이 아홉, 혹은 열...온통 그리움으로 빼곡한 그 때...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