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방 한 칸-박영한 님의 제(題)를 빌려
*김 사 인*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 비는 재주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
달아오른 불덩어리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본다
밖에는 바람 소리 사정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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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디넓은 원고지 칸을 메우는 일을 업으로 삼은 이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팍팍한 일상이다.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에 누워 아들놈의 손끝 하나에 천근만근의 무게를 느낄 수밖에 없는 생...
'가장'이 된다는 건 그래서 여간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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