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송 창 우*
첫눈 내립니다
이 섬에 살며 눈을 만나기란
가출한 누이만큼 어렵습니다
십여 년 전 녹아버린 눈사람은
그 후 다시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눈을 본 일도
눈사람을 만든 기억도 없는
누이의 아이들 머리칼에도
하얀 꽃이 핍니다
개펄 숨어살던 게들도
일제히 기어 나와 만세를 부릅니다
어제는 물질 간 성길 형이 닷새 만에 돌아왔습니다
발목에 걸린 검은 물옷 다 벗기도 전에
깍지 낀 두 손은 심장을 누르고
마중 나간 사람들은
구멍 난 눈 속에 파고든 바다를 보았습니다
누이에게 전화를 걸어
이 섬의 눈 소식 전하고 돌아서니
불현듯 찬비 귓불을 적십니다
홀로 바다를 가르고 돌아온
형의 낡은 동력선도 흠뻑 젖었습니다
잠시 바닥을 드러냈던 바다
만세를 지우며 푸르게 채색되고
누이의 아이들은 얼굴을 가리고 달아납니다
=================================시집, [꽃 피는 게](신생, 2010)
꽃샘추위다...
지난 겨울, 눈은 내렸던가. 서둘러 꺼냈던 봄옷을 목덜미까지 끌어 올리듯 기억을 끌어 올려 본다. 눈은 내렸던가...내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가출한 누이"마냥 아득한 남녘의 눈소식...그래서 더 애타는가...
무언가에 애를 태우는 일은 그만한 그리움인지도 모를 일이다.
봄...
올봄엔 무엇에 애를 태우고 무엇을 그리워 하나...그것도 지나고 나면 허허로움으로 남을 일일테지만...그래도 무언가에 애를 태우며 아등바등대던 때는 행복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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