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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속의 고드름 한 줄...강원도

강원도는 늘 마음 한구석에 좀체 녹지 않는 고드름 한 조각같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봄, 여름, 가을의 풍경보다 겨울의 강원도가 그만큼 인상적이었던 까닭이다. 발목이 푹푹 빠지던 동해의 어느 골목길. 시멘트 담벼락 사이로 흑백사진처럼, 가늘게 이어지던 골목길 풍경. 불빛 하나 없는 태백산 산줄기를 하염없이 덜컹거리며 달리던 비둘기호의 퀘퀘한 냄새,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 산도로를 빨간 완행버스로 하염없이 올랐던 그때, 차창으로 흐르던 겨울 눈더미 속의 탄광빛 개울들...멀미가 잦던 스물 한 살 때의 강원도 기억들이다. 2년 여의 학과 조교 생활을 마치고 불쑥, 그 기억을 따라 올랐던 또 한 번의 강원도. 캄캄한 어둠 속에 수십 개의 주황빛 실내등을 띠처럼 두르고 달리던 무궁화호. 오가는 차편도 드물던 ..

제법 먼 길...

강원도를 다녀온 지 일주일만이다. 태백산의 골 깊은 마을들을 징검돌처럼 겅중겅중 건너 다니다가, 불쑥 산자락 탄광촌들의 그늘에서 묻혀 온, 마음의 그을음 한자락을 씻어 보고픈 생각. 그래서 먼 바다, 제주로 향한다. 비행기로 한 시간 채 안 되는 길임에도 난 언제나 제주가 멀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먼 느낌의 제주가 좋다. 함부로 가볼 엄두가 나지 않는, 그래서 몇 번을 큰맘을 먹어야 감행할 수 있는 여정....그래서 계획에서부터 설레고마는 길... 관광객에 치여 번잡하게 다니기보다는 내뜻대로, 때로는 아무 계획없이, 이리저리 흩어진 길들에 섞여가는 여행이 좋다. 학창 시절, 제주도행 졸업여행을 거부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제주도에서도 기계는 반듯한 길들만 찾는다. 현지 어른들께 길을 물어가며 해안도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해방', 그 모호한 이름...

10대 때부터 나는 늘 해방을 꿈꿨다. 아버지로부터, 학교로부터, 그리고 나자신으로부터... 결국 '열 여섯'의 겨울에 나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을 감행했다. 울타리 밖은 추웠고, 늘 함께라 여겼던 친구들은 막상 혼자가 된 나에게서 저만치 떨어져 나갔다. 정작 해방을 감행했음에도 울타리 밖 어디든, 열 여섯 짜리가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결국, 완행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외할머니 집을 찾아가 치기 어린 반항을 흉내낼 따름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외손주 놈을 내치지 못하신 외할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손주놈 밥을 해먹여야 하는 때늦은 고역을 치르셨다. 외할머니의 그 노역을 가늠하지 못한 채, 새벽이면 비릿하게 번져나는 연밭길을 돌아, 난 새벽 완행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꼬박꼬박 ..

하루하루... 2022.04.21

(시론) 도시를 디자인하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라발 지구는 산업혁명기에 급속도로 몰려든 이민자들이 모여 형성된 동네였다. 좁은 골목을 끼고 작은 아파트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선 이 거리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데다 치안이 좋지 않아 현지인들조차 출입을 꺼리던 곳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바르셀로나 시가 '아름다운 라발 만들기' 운동을 기획했고, 디자이너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어져 지금은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트렌디한 곳이 되었다. 독일 뒤스부르크는 유럽 최대 규모의 '티센 제철소'가 자리잡고 있었으나, 80년대 들어 철강산업의 몰락으로 약 60만 평에 이르는 이 제철소는 독일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라인강변에 늘어선 채 벌겋게 녹슬기 시작한 거대한 철강 구조물은 흉물로 전락했다. 폐공장 터를 세계가 주목하는 지금의 환..

산문 읽기... 2022.03.13

가상으로의 도피, '메타버스'(Metaverse)

짐 캐리 주연의 영화 (1998년 개봉)는 영화사 100년에 손꼽을 만한 작품으로 남았다. 코믹스러운 짐 캐리의 다채로운 표정 끝에 드러나는 가공의 현실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슬픔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소소한 일상에 설레고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기도 하던 트루먼의 일상이, 실제로는 거대한 세트 장 안에서 이루어진 각본의 결과였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은 허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안정이 보장된 세트장 안의 삶을 거부하고 과감히 세트장 밖의 불확실한 삶을 선택하는 트루먼에게서, 우리는 누구에게도 규정되지 않는 주체적 존재로서의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다음 해에 개봉된 영화 (1999년 개봉)는 파격적인 카메라 연출 기법과 CG가 접목된 화려한 영상으로 ..

산문 읽기... 2021.09.29

'스타벅스 '와 인문학마케팅

커피 마니아로 익히 알려진 고종이 커피를 처음 맛 본 것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관에서였다고 하니, 우리나라 커피 역사의 시작은 그리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로부터 100년.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커피 시장이 되었다. 특히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인 스타벅스는 대한민국에서도 최고의 브랜드가 되었다. 1999년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이 문을 연 이후 20여 년 동안, 매장은 총 1500여 개로 늘었고 매출은 2조 원에 이른다. 문득, 스타벅스의 마케팅 전략이 궁금해진다. '스타벅스'라는 이름은, 멜 빌의 소설 에 나오는 일등항해사의 이름인 '스타벅'에서 따왔다. 영어 교사(제리 볼드윈), 역사 교사(지브 시글), 작가(고든 보커) 들로 구성된 스타벅스의 설립자들은, 갑판 위에서 늘..

산문 읽기... 2021.09.02

국어교과서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이유...

국어를 가르치다보면 "이게 요즘 애들에게 이해가 될까",하는 작품들이 여럿 있다. 아이들의 감성은 두고서라도 요즘의 성 인식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로 인해 가르치는 일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수십 년 시험 위주에 맞춰진 교과 편성의 폐해다. 교육 현장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는 여럿이지만 교과서 개편은 그중 가장 먼저 서둘러야 하는 사안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국어교과서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이유** ㅡ김해뉴스, 2021. 5. 26.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

하루하루... 2021.06.03

음악에 실려 온 인연...

1998, 3. 9...그해 봄...꼬박 23년 전의 기억이다. 한창 학위논문 준비로 밤을 새우던 날이 잦던 때에, 피아노를 전공하던 친구가 간단한 곡소개를 곁들여 클래식 몇 곡을 테이프에 녹음해 주었다. 한동안, 늦은 밤이나 새벽녘 방 안을 흥건히 채우던 그 음률들은 그때 그 곡들만큼이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그때 그 친구의 딸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때의 제 엄마만큼이나 발랄하고 귀여운 아이다. 어느 날, 수업 때 음악 얘기가 우연히 나와 좋아하는 음악 장르들을 얘기했더니 이 아이가 몇 곡들을 이리 보내온다. 20여 년 전, 제 엄마가 보내주었던 음악들을 다시금 꺼내 듣는다. 그리고 이 아이가 보내온 음악도 듣는다. 두 달 째, 병원을 오가는 먼 길이 지치지 않고 행복해지는 까닭이다. 인연이라는 ..

하루하루... 2021.04.17

LH사태, 공직자의 책무...

고대로부터 토지제도는 위정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오늘날과 같이 화폐가 활성화 되지 못한 상황에서 왕족, 귀족층의 생계를 보장해주고, 왕권 창출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공신들에 대한 논공행상은, 오로지 토지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지배층의 사회 윤리관을 공고히 하기 위해 여성의 정절에 대한 포상이 확대되었고, 분배가 느는 만큼 토지에 대한 위정자들의 고민도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근대 이후로도 땅이 일반 민중의 보편적 재화로 기능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한된 땅덩이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인구 탓에, 이리저리로 내몰린 빈민들은 도시 변두리를 전전하며 평생 문패 하나 새기지 못한 채 가난을 물려야 하는 세월이 길었다. 그때 우리에게 '주택복권'은, 변변찮..

하루하루... 2021.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