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91

신축년(辛丑年), '소'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

하늘과 땅의 우주론적 질서를 조합하여 인간과 우주의 조화, 만물의 흐름을 살피려 한 '간지(干支)'는 중국에서 유래해 동양의 한자권 여러 나라로 퍼져나간 역법 가운데 하나이다. 간지는 하늘의 질서를 뜻하는 '천간(天干)'과 땅의 질서를 나타낸 '지지(地支)'가 합쳐진 이름인데, 이 둘을 조합하면 모두 '육십갑자'가 만들어진다. 우선 천간은 '갑, 을, 병...'으로 이어지는 십간(十干)으로 구분되고, 지지는 '자, 축, 인, 묘...'등의 십이지지로 나뉜다. 2021년 새해는 천간의 여덟 번째인 신(辛)과 지지의 두 번째 '축(丑)'이 어우러지는 신축년이다. 이때 '신'은 흰색을 뜻하고, '축'은 소를 가리키므로 내년은 '흰 소 띠의 해'가 되는 것이다. 소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나..

하루하루... 2021.03.25

『페스트』와 『눈 먼 자들의 도시』, 그리고 '코로나'

194X년 4월 16일 아침, 평온하기 그지없는 알제리의 해안 도시 '오랑'.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을 나서다가 피를 토하고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발견한다. 병원을 관리하는 수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리외는 퇴근길 자신의 집 복도에서도 피를 토하고 쓰러진 쥐를 발견하고선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다. 그리고 며칠 뒤, 도시는 온통 피를 토하는 쥐들의 사체로 덮이기 시작했다. 페스트의 시작이었다. 평온하기 그지없던 이 조용한 해안 도시는, 사람들의 곁에서 피를 토하고 죽는 쥐들로 인해 순식간에 공포의 도시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도시는 봉쇄되었고, 봉쇄된 도시 안에서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 절망과 죽음이 혼돈하는 재앙의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19..

산문 읽기... 2021.03.25

'ㅡ리단길'을 아시나요?

언제부터인가 나라 곳곳에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본뜬 이름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더니, 이젠 새롭게 꾸며진다 싶은 길거리엔 모두 '-리단길'을 붙이고 있다. 객리단길(전주), 평리단길(인천), 황리단길(경주), 해리단길(부산), 봉리단길(김해) 들처럼, '-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거리는 전국에 20여 곳이 넘는다. 도시의 낡은 골목들이 새롭게 단장을 하고, 쇠퇴한 골목들에 사람들이 북적대는 일은 분명 반길 만한 일이다. 그러나 왜 하나같이 '-리단길'이라는 이름이어야 할까? 원래 '경리단길'은, 1957년 3월에 설립된 '육군중앙경리단'(현, 국군재정관리단)이 위치해 있던 일대를 일컫던 이름이었다. 따지고 보면 각 동네의 첫 글자만 따와 거기에 '-리단길'이라 붙이는 것은, 우리 어법에도 전혀 맞지 않..

헌터 킬러...리더가 책임져야 하는 목숨들...

2018년 12월에 국내 개봉된 영화, '헌터 킬러' 미 핵잠수함 '헌터 킬러'와 러시아 반군 간의 대결을 다룬 영화이다. 제라드 버틀러, 게리 올드만... 쟁쟁한 이름들이다. 그 이름만큼이나 연기력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러시아 반군에 납치된 러시아 대통령을 구해, 3차 세계 대전을 막아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외부의 간섭이 절제되는 심해 항로에서 초긴장감으로 몰입하게 하는 장면은 가히 숨을 멎게 할 정도다. 지상과 심해에서 각각의 리더(대통령, 함장)들은 수많은 목숨들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무게를 지닌 사람들이다. 판단력과 담대함. 이 영화가 보여주는 리더의 필수조건들이다. 난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 하더라도 두 번, 세 번 보는 스타일은 아니다. 좋은 영화란 볼 때마다 그 감흥이 증폭되..

소설,알렉산드리아ㅡ이병주

한국의 발자크를 자처하던 작가 이병주는 박정희, 황용주와 더불어 삼총사라 불릴 만큼 돈독한 술친구들이었다. 이후, 스스로 공산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공'을 극단적으로 밀어부친 박정희는 그 돈독했던 술친구들을 '반공법 위반'의 죄목으로 칼을 씌웠다. 5.16의 모사책으로 알려진 황용주와 박정희는 대구사범 동기간이었다. 부산일보 편집국장이었던 황용주의 주선으로 당시 국제신문 주간이었던 이병주와 셋은 절친한 술친구가 되었다. 황용주가 5.16의 핵심 모사책(정수장학회 강탈 책임자)으로 알려져 있음에도 박정희는 그와 이병주를 반공의 칼날 앞으로 내몰았다. 황용주는 금세 풀려났으나 이병주는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평생을 박정희에 대한 원망을 풀지 않았다는 이병주는 그 원한을 그의 데뷔작, 에 고스란히..

산문 읽기... 2020.09.05

황용주 평전ㅡ그와 박정희의 시대

이런 시대가 있었다....60년 전에.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을 움직이는 건, 혈연, 학연, 지연... 죽어라~고 좋은 대학을 보내려는 것은 그 노력의 순수한 대가보다는 그 인맥, 학맥 속으로 편입되고픈 자본적 경제 논리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인맥들이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그나마 소박한 이기심일 것이다. '민중을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 라는 테제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민중, 혹은 국민을 위한 적이 없다. 지금도 말끝마다 '국민'을 입에 올리는 자들 치고 정작 국민의 발끝 아래 엎드리는 자들은 없다.

산문 읽기... 2020.09.05

네잎클로버...혹은 토끼풀

어느 집 계단 한 켠에 소담스런 화분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화분에 심어진 토끼풀은 처음이다. 어릴 적, 학교 오가는 둑방길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느라 오후 햇살을 다 놓치던 때가 있었다. 그땐 그 행운말 하나에도 그리 간절했었는데... 그리스 신화에선, 벌들이 독풀을 피할 수 있게 제우스가 붓으로 흰 동그라미를 표시해줬다고 전한다. 토끼풀꽃이 그리 생긴 까닭이다. 그 흰꽃대를 갈라 풀반지, 풀시계를 만들어 연인의 손목을 수놓아 주던 젊은 날 한 때도 있었다. 수십 년 전 일깃장 갈피 어딘가에는, 입시를 앞둔 내게 네잎클로버를 코팅해 건넸던 갈래머리 소녀와의 추억 한 토막도 끼워져 있을 것이다. 저 소담한 화분 하나에도 옛생각이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는 걸 보니, 확실히 갱년기인가 보다.

또 한 번의 이사...

꼬박 7년만에 또 한 번 이사를 감행해 본다. 멋 모르고 입주를 결정한 이 아파트는 시작부터 엉망이었다. 그걸 바로잡아 보려고 나름 책임감 갖고, 여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입주협의회 활동을 잠깐 했지만, 난 여전히 세상 사는 일에 서툴다는 걸 확인한 시간일 뿐이었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참 뜻대로 되질 않는다. 그래도 이 시간이 또 한 번 나를 키우는 시간이었음을 믿어 보기로 한다.

하루하루... 2020.06.26